통찰은 어디에서 생기는가?_자몽인_안광호

실천경영칼럼 2012.11.08 18:30

 

통찰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인간의 혜안과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왜 누구는 같은 것을 봐도 피상적 겉핥기에 그치는 반면, 누구는 그 안에서 삶의 지혜와 내적 관계의 흐름까지 파악할 만큼 깊게 사유하는가?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100권의 책을 읽었지만 단지 권 수를 늘리기에 바쁜 사람이 있는 반면, 한 권의 책 만으로도 충분히 깊고 넓은 의식의 진보를 이루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H’ 도 그런 친구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나이가 20대 후반이었을 때였다. 그는 독서와 관련된 강의를 하면서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비록 나이는 젊었지만 몇 번의 대화를 통해서 참 순수하면서도 상당히 깊은 내공을 가진 친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깊음 속에서 진솔하게 펼쳐지는 그의 글은 나비를 끌어당기는 꽃의 향기 처럼 나를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해서 삶의 변혁을 이루었노라고 고백을 했다. 지방의 대학교를 중퇴한 것으로 나는 알고 있는데, 10년 간의 독서를 통해서 삶에 대한 나름의 통찰을 얻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한 성장의 개인사를 대중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그의 글과 강의는 고정적인 팬이 있을 만큼 나름의 독특함과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 수강생들 중에는 40~50 대 이상도 다수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도 그가 가진 깊이와 넓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속독 보다는 지독을 강조한다. 사실 그는 많은 책을 읽지는 않는다. 완독을 하는 책은 1년에 12권 정도가 전부다. 대신에 삶의 지평을 늘려줄 그런 양서들을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런 책들을 씹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오늘 내가 이야기 하고픈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인간의 통찰은 다양한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자기의 삶을 뒤돌아 보고 재해석 하여, 자기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온다고 본다. 다양한 경험을 쌓는 제일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독서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세계는 분명히 다양성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독서의 간접적 경험은 그 경지가 무한하다. 책을 읽더라도 어떤 이들은 그냥 한 번 쭉 읽고는 다 읽었노라고 만족하며 잊어버린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소위 말해서 책을 씹어서 소화를 한다. 무슨 말인가?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들은 줄을 친다. 그리고 줄 친 부분에 대한 자기의 느낌들을 간단하게 우선 메모를 한다. 처음에는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글쓴이의 입장이 되어 책을 읽지만 한 번 더 읽을 때는 줄 친 부분에 대해서 자기의 생각과 느낌들을 함께 적어본다. 즉 저자와 토론 아닌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또 꼭 외워야 할 중요한 정보들이 있으면 따로 표기를 해 두기도 한다. 그렇게 전체적으로 줄 친 부분들을 중심으로 굴비를 엮어 가듯이 하나로 엮어서 큰 뼈대를 먼저 만들고, 여기에 자기의 삶을 빗대어 살을 부쳐 나간다. 이렇게 한 책을 읽으면 두 세번 곱씹고 반드시 자기의 목소리로 감상문을 남긴다. 저자의 책이지만 그 책을 통해서 바라본 내 인생의 이야기가 담긴 또 다른 소책자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또한 자기가 정리한 감상문을 자기의 일상 삶에 다양한 각도로 접목시켜 보고 그때 마다 올라오는 여러 정황들, 생각과 느낌들을 다시 정리해 보는 것이다. 글자로 된 책이 삶에서 살아있는 글로써 승화를 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내 삶이 더 깊어지고 넓어지게 된다.

 

이런 습관을 한 번 들여 보기를 권한다. 처음에는 습관이 익숙하지 않아서 귀찮을 수 있다. 책 한 권을 읽는 데 드는 에너지가 1 이라면 3에서 심지어 5 이상의 에너지가 소비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가? 남들한테 몇 권 읽었노라는 지적 허영을 뽐내기 위함은 아니지 않는가? 매년 수 만권의 책이 쏟아진다. 그 책들을 어차피 다 읽을 수도 없고, 읽을 필요도 없다. 내 삶을 깊고 넓게 성장시켜 줄 책 한 권을 가지고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나는 보고 있다. 특히나 수천년 이상 내려온 경전이나 인문고전의 경우는 더욱 더 그러하다. 소위 말해서 그런 책들은 수천년간 검증된 스테디셀러가 아닌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인류의 사랑을 받으면서 전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가을은 참 매력적인 계절이다. 풍성함 속에서도 깊은 사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지 풍성하기만 하다면 깊이가 없을 것이지만 풍성함 속에서 깊이 마저 가지고 있는 묘한 매력 덩어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것 같다. 이 가을 이왕 책을 읽는다면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방법으로 좋은 책을 고르고 그 책을 곱씹어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새로운 경험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새 습관이 당신을 더 깊고 넓게 성장시키고, 통찰과 혜안을 가진 현인으로 거듭나게 해 주리라 믿는다.

 

안광호

[주제어] 통찰, 독서, 인문고전, 경전, 가을

khajoh@naver.com

[칼럼니스트 소개]

안광호 박사는 포항공대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5년 동안 통신용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5제품을 양산하여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세계최초로 CDMA1 Chip Transceiver 를 개발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지식경제부산하 국가연구소인 '전자부품연구원'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기획하고, 선도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잘산다는 것이 뭘까? 에 대한 순수한 탐구욕을 가지고 있으며과학의 바탕위에 인간의 심리와 의식세계를  통합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글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저서로는[알아차림, 매일경제신문사], [소프트마인드, 비전과리더십], [마음세수, 예문당], [삼성붕괴시나리오, 다산북스], [열다섯 살 꿈의 시크릿, 미래지식], [긍정, 원앤원북스],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도전, 에이원북스], [6 시그마로 부자아빠 되기, 네모북스], [행복한 사과나무 이야기, 아름다운사회] 가 있으며, [꿈과 성공이 있는 명품인생] 이라는 오디오북을 발간하였습니다. 2007년 헤럴드 경제가 주최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사람’ 20인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컨설팅, 코칭, 집필 및 칼럼에 대한 문의 및 의뢰는 khajoh@naver.com, 홈페이지: www.akh.co.kr, 블로그: www.doctorahn.co.kr,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hoahn1, 트위터:www.twitter.com/kwanghoahn

 

[과학과의 통합을 위한 그의 독창적 행보]

l  6 Sigma Black Belt 획득

l  STRONG(직업흥미프로그램) 전문가 획득

l  한국심리학회 MBTI 전문가 획득

l  에니어그램 수련

l  Habiram Sprituality Training Course (영성심화수련)

l  위빠사나 명상 수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설정

트랙백

댓글

이면을 파악하는 힘_안광호_자몽인

실천경영칼럼 2012.10.18 17:57

 

이면을 파악하는 힘

내가 예전에 모시던 직장상사가 있었다. 결재 건이 하나 있어 그녀를 찾아갔으나 출장 중이라 서무한테 결재서류를 놓아두고 나왔다. 그 전 상사가 있을 때부터 늘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녀로부터 날선 전화가 온 것은 몇 일이 지나서였다.

 

그녀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결재건의 내용을 문제 삼았다. 나로서는 좀 의아했다. 예전에도 이런 양식과 내용으로 아무 문제 없이 그녀로부터 결재를 잘 받았는데, 왜 이제 이렇게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을 듣다보니 뭔가 감이 잡혔다. 그녀는 내용과 양식을 문제 삼았지만 사실 화가 난 것은 다른데 있었다. 그녀가 없는데 결재판을 서무에게 맡기고 간 것 때문이었다. 말 중간 중간에 그러고 말이예요!’ 속에 그녀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녀도 자기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무시당했다는 생각 때문에 나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사태를 파악하고 나는 정중하게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제가 직접 만나 뵙고 이런 결재 내용들에 대해서 잘 설명을 드려야 했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다시 없도록 하겠습니다. 혹 이 일 때문에 기분이 나쁘셨다면 제가 정중히 사과드릴 테니 기분 푸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아침햇살에 눈이녹듯 날선 감정도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나도 화를 내서 미안해요. 앞으로는 취지에 대해서 직접 얼굴 맞대고 설명을 꼭 해주면 좋겠어요

일은 그렇게 쉽게 끝나 버렸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때는 우선 잘 들어야 한다. 그 안에 답이 있다. 속을 직접적으로 비추는 것이 가볍거나 치사하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래서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서툴거나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속뜻을 잘 파악하지 못하면 괜히 감정만 상하고 불신의 골만 더 깊어진다. 이럴 때 일수록 잘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뭔가가 보인다. 진짜 상대의 내면이 원하는 것들이 말이다.

 

그 사람이 어떤 상처에 갇혀 있는지? 실재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이 훤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기가 뭘 원하는지 스스로 파악이 안 되는 사람들은 화를 내면서도 진짜는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지도 모른다. 그녀도 사실 나에게 화를 내기는 했지만 정말로 무엇 때문에 화를 낸 것인지는 몰랐던 것 같다. 그녀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을 했고, 더불어 인정받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렸으니 눈치채지 않게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고 내면과 자주 대화를 해 보라. 우리의 마음은 정말로 소란스럽다. 이건 완전히 시장판이다. 끊임없는 에고의 지저귐 때문에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하루에 과연 몇 분이나 진짜 자기에 침묵과 호흡을 알아차리며 대화를 하는가? 그것을 잊고 살면 삶이 공허해진다. 진짜의 나가 살고 싶어하는 것들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살아도 가짜 삶을 살게된다. 어느순간 알아차림의 센서는 무뎌져 고장이 나고 남들이 주입해 준 생각, 상처들이 나 인줄 알고 살아간다. 열심히 살고 밤낮없이 뛰어다니는데 마음은 늘 조급하고 빈곤하다.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하자. 어떤 감정이 올라오면 그 감정을 떨어져 바라보는 것이다. 그 순간 생각과 느낌이 아닌 진짜 나를 어렴풋하게나마 경험을 할 것이다. 그렇게 자기마음을 관찰하는 훈련을 하기 시작하면 상대의 마음관찰은 더 쉽다. 내적으로 향하는 화살표를 외적으로 돌려놓기만 하면 된다.

 

알아차림이 무릇 중요하다. 잘 알아차려야 방향을 알 수 있다. 열심히 뛰고 달리는데 잘 헤아리고 알아차려 진짜 내가 가야 할 길을 못 간다면 낭떠러지나 해초에 걸려 넘어질 확률이 아주 높다. 물론 그때 가서 알아차리는 것도 늦지는 않는 것이지만 이왕이면 처음부터 진짜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참나를 만나다 보면 또 다른 의식성장의 기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삶이 뭐 별거 있는가? 잘 알아차려 진짜 나의 모습대로 최선과 최대로 달리고 또 인연이 끝나면 깨끗하게 놓아주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관계와 경험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커 가는 게 이 지구별 삶이다. 잘 헤아려 볼 일이다.

 

안광호

[주제어]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 크리슈나무르티,

khajoh@naver.com

[칼럼니스트 소개]

안광호 박사는 포항공대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5년 동안 통신용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5제품을 양산하여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세계최초로 CDMA1 Chip Transceiver 를 개발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지식경제부산하 국가연구소인 '전자부품연구원'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기획하고, 선도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잘산다는 것이 뭘까? 에 대한 순수한 탐구욕을 가지고 있으며과학의 바탕위에 인간의 심리와 의식세계를  통합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글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알아차림, 매일경제신문사], [소프트마인드, 비전과리더십], [마음세수, 예문당], [삼성붕괴시나리오, 다산북스], [열다섯 살 꿈의 시크릿, 미래지식], [긍정, 원앤원북스],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도전, 에이원북스], [6 시그마로 부자아빠 되기, 네모북스], [행복한 사과나무 이야기, 아름다운사회] 가 있으며, [꿈과 성공이 있는 명품인생] 이라는 오디오북을 발간하였습니다. 2007년 헤럴드 경제가 주최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사람’ 20인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컨설팅, 코칭, 집필 및 칼럼에 대한 문의 및 의뢰는 khajoh@naver.com, 홈페이지: www.akh.co.kr, 블로그: www.doctorahn.co.kr,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hoahn1, 트위터:www.twitter.com/kwanghoahn

 

[과학과의 통합을 위한 그의 독창적 행보]

l  6 Sigma Black Belt 획득

l  STRONG(직업흥미프로그램) 전문가 획득

l  한국심리학회 MBTI 전문가 획득

l  에니어그램 수련

l  Habiram Sprituality Training Course (영성심화수련)

l  위빠사나 명상 수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설정

트랙백

댓글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_22장~34장_안광호_자몽인

독서리뷰 2012.10.09 19:00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22)

 

22. 휘면 온전할 수 있고

 

『휘면 온전할 수 있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움푹 파이면 채워지게 되고,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나를 품고 세상의 본보기가 됩니다. 스스로를 드려내려 하지 않기에 밝게 빛나고, 스스로 옳다 하지 않기에 돋보이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되고,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오래갑니다. 겨루지 않기에 세상이 그와 더불어 겨루지 못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휘면 온전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어찌 빈말이겠습니까? 진실로 온전함을 보존하여 돌아가십시요.

 

-휘면 온전할 수 있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

휘지 않으면 부러진다. 고드름과 대나무를 보라. 대나무는 아주 높게 자란다. 아마도 나무의 굵기 대비 가장 높게 자라는 나무가 아닐까? 하지만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휘청 휘청 휠 망정 절대로 부러지는 법이 없다. 휘고 굽어지기 때문에 다시 곧아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드름처럼 절대 휘지 않는 것들은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부러져 버린다. 사람도 이와 같다. 말랑말랑 하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변화에 쉽게 적응을 하지만 자기의 신념이 너무 확고한 사람들은 어느 새 그 신념이 고정적 집착인 고집 이 되어 스스로 화를 자초한다.

 

-움푹 파이면 채워지게 되고,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

나는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파이면 채워지고, 헐리면 새로워지는 것이 세상이치다.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양과 음은 별개가 아니다. 양으로 꽉 차면 한 번 휘몰아 음으로 변화하고 또 음이 꽉 차면 양이 나타난다. 일음일양위지도 라 했다. 세상일은 새옹지마 . 그러니 내가 잘 나갈 때는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하고, 바닥에 맴돌 때는 마음을 다시 다잡아 그 안에서 나를 단련시켜 다음을 도모해야 한다. 뒤돌아 보면 좋고 나쁨도 따로 없다. 그 당시는 나를 정말로 힘들게 했다고 생각했던 일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더 크게 성장하고 깊어졌던가? 그러니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에 일희일비 하기 보다는 절대긍정과 감사의 자세로 그 일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알아차려 지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챙겨야 한다.

 

-성인은 하나를 품고 세상의 본보기가 됩니다-

성인은 하나를 품은 사람이다. 나와 남의 구별이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아프면 내가 아프다. 자비심이 절로 생길 수 밖에 없다. 성인은 사랑으로 하나가 된 사람이다. 선과 악의 구별도 없고, 좋고 나쁨도 따로 없다. 그냥 하나로 사는 사람이다. 이런 성인이야말로 하나님의 독생자요, 그가 곧 하나님이다. 그의 행동은 절대자의 권능을 드러냄이다.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기에 밝게 빛나고, 스스로 옳다 하지 않기에 돋보이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되고,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오래갑니다.

스스로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그래 너 잘났다 는 시기심만 유발할 뿐이다. 아니면 너 잘난 거는 알겠는데, 먼저 인간이 되라 는 핀잔만 듣는다. 이런 사람들한테 다가가는 사람들은 다 잇속을 챙기려는 소인배들 뿐이다. 까마귀가 사는 시커먼 흙탕물이다. 하지만 성인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고개를 숙인다. 공은 주변으로 돌리고 과는 자기의 탓으로 여긴다. 그러니 더 큰 우러름을 받는다. 실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품까지 뛰어나다는 평판을 얻고, 그 인품으로 인해 실력이 더 돋보인다.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하고, 그 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지만 그 공을 주변사람들 몫으로 돌리는 이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도인은 자기를 드러낼 수 없다. 자기라는 분별의 이미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로 아우르는 큰 그릇이기 때문에 모든 이들을 담을 수 있다. 노자가 꼽는 최고의 지도자다. 플라톤이 꼽는 철인정치의 표본이다. 오늘의 구절들을 적어내려 가며 나 자신을 뒤돌아본다. 나는 지나치게 나의 틀이 강하지 않은지? 또는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마음은 없는지 살펴보게 된다. 여러분은 어떤가?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23)

 

23.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이 자연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이 자연입니다. 회오리 바람도 아침 내내 불 수 없고, 소낙비도 하루종일 내릴 수 없습니다. 누가 하는 일 입니까? 하늘과 땅이 하는 일 입니다. 하늘과 땅도 이처럼 이런 일을 오래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도를 따르는 사람은 도와 하나가 되고, 덕을 따르는 사람은 덕과 하나가 되고, 잃음을 따르는 사람은 잃음과 하나가 됩니다. 도와 하나가 된 사람, 도 역시 그를 얻었음을 기뻐하고, 덕과 하나가 된 사람, 덕 역시 그를 얻었음을 기뻐하고, 잃음과 하나가 된 사람, 잃음 역시 그를 얻었음을 기뻐할 것입니다. 신의가 모자라면 불신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이 자연입니다. 회오리 바람도 아침 내내 불 수 없고, 소낙비도 하루종일 내릴 수 없습니다. 누가 하는 일 입니까? 하늘과 땅이 하는 일 입니다. 하늘과 땅도 이처럼 이런 일을 오래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

자연을 보라. 가끔씩 회오리 바람, 소낙비 등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아주 잠깐 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떤가? 하루에 과연 얼마동안 침묵속에 잠겨있는가? 끊임없이 말을 내뱉고, 오만가지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간다. 참나와의 조우는 침묵 속에서나 가능하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목소리, 그 영혼의 순수한 울림을 듣기 위해서는 일단 입을 닫고, 생각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먹고 살기 위해서 바쁘다는 핑계로, 말과 생각의 소음이 요란하게 울리는 시장바닥에 있으니 산들바람 같은 영혼의 맑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먹고 살기 위해서 바쁘게 달려가지만, 정작 내가 왜 사는가? 조차 모른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좀 불쌍해 보인다. 그래! 현상계에 떨어져 먹고 살기 위해서 말은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진짜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늘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Self Remembering 이다.

 

- 그러므로 도를 따르는 사람은 도와 하나가 되고, 덕을 따르는 사람은 덕과 하나가 되고, 잃음을 따르는 사람은 잃음과 하나가 됩니다. 도와 하나가 된 사람, 도 역시 그를 얻었음을 기뻐하고, 덕과 하나가 된 사람, 덕 역시 그를 얻었음을 기뻐하고, 잃음과 하나가 된 사람, 잃음 역시 그를 얻었음을 기뻐할 것입니다. 신의가 모자라면 불신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

도를 따르면 도와 하나가 된다. 똑 같은 이치로 도를 잃으면 잃음과 하나가 된다. 빛을 잃으면 어둠이 되는 것과 같다. 도는 에덴동산, 천국, 하나됨의 세상이다. 피아의 구별이 없고, 선악, 시비가 따로 없는 세상이다. 여기에서는 용서도 없다. 용서는 나와 남의 구별이 있어야 가능한데, 이 마저 초월해 있으니 용서를 말하는 것 조차 넌센스다. 용서가 없으니 정죄 또한 있을 수 있겠는가? 간음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예수를 시험하러 했을 때, 예수는 죄 없는 자는 돌멩이로 저 여인을 쳐라고 했다. 예수는 더 나아가 그 여인에게 내가 너를 정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예수의 마음이 바로 도다. 그런데 도를 잃는다는 것은 현상계에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남이 있고, 선악, 시비가 분명히 갈린다. 이원론, 상대론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곳에서는 신과 나도 분리의 대상으로 본다. 그러니 신이 두려움의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이 죄의식을 유발한다. 죄를 면하는 방법은 두려움과 직면하고 스스로의 대가를 치르는 것 뿐이지만, 인간의 에고는 그 대신 화살을 밖으로 돌려 다른 대상들에게 투영을 한다. 현상계는 거짓나 끼리 한 바탕 거나한 싸움을 벌이는 곳으로 전락한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선택의 힘이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돌아가 하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이렇게 떨어지고, 잃음의 세상에서 살아갈 것인가?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24)

 

24. 발끝으로는 단단히 설 수 없고

 

『발끝으로 서는 사람은 단단히 설 수 없고, 다리를 벌리는 사람은 걸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사람은 밝게 빛날 수 없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사람은 돋보일 수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일을 밥찌꺼기 군더더기 같은 행동으로 모두가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의 사람은 이런 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드러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명예와 권력, 그리고 부를 과시하려는 사람의 속성은 무엇인가? 나는 이 24장에서 다섯가지 정도를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무엇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 무엇이 부족하다는 자기암시다. 자기의 그 무엇을 자랑하고 떠 벌리는 사람은 무의식 속에 그 무엇을 못 가지고 있다는 상처가 있다. 말을 끊고, 나도 알아! 라고 늘 이야기하던 직장동료가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언제나 그의 대화기법은 그랬다. 남들 보다 알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위축감이 오히려 허장성세를 부리게 하지 않았나 싶다. 꽉 차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아무 말이 없다. 그리고 그것을 쓸 때는 소리소문 없이 한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가 부자이건, 가난뱅이건 돈에 대한 상처가 있다. 그런 상처가 돈에 대한 지나친 갈구와 불안을 야기한다.

 

둘째, 이렇게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남을 의식하게 되어있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스스로 만족하면 그 뿐이다.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공허하다. 이들은 진짜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삶은 뒷전이고 부모가 바라는 길을 걸어갔거나, 사회적 평판에 지나치게 연연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명예를 추구해 보기도 하지만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듣지도 또 행하지도 않기 때문에 가슴은 텅 비어있다. 남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고 났을 때 이들의 공허함은 배가 된다. 그런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서 더 외적인 것들을 추구하지만 채워지지 않는다. 추구해야 할 것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일단정지하고 듣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나는 이를 알아차림 이라고 부른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진짜의 내가 외치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자기경청 자기관찰 이 반드시 필요하다. 삶에서 아주 소소한 것일 지라도 그러한 것들을 챙겨보는 것에서 그들의 마음은 가뭄으로 갈라진 땅에 단비가 내리듯이 비로소 촉촉해 지는 것이다.

 

셋째,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뭔가 (이미지) 를 만든다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서는 가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넌센스다. 따라서 자기를 드러내면 낼수록 상대적 분리감은 훨씬 더 강해진다. 참나는 사라지고 에고가 아주 강해지며, 자기를 돋보이기 위해서 남을 힐난하고 비난하기 시작한다. 나 이외의 모든 것들(심지어 신도 포함)을 더 분리시켜 보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서는 신과의 분리감이 훨씬 더 깊어지고 이는 근원적 죄책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 죄책감이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시키는데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 죄책감을 다른 사람들 한테 투영을 한다.

 

넷째, 우리는 스스로 드러내는 것에 착 달라붙는다. 고상한 말로는 자기동일시 에 빠진다. 내가 모는 차, 내가 벌어들이는 수입, 나의 집 크기와 가격, 사회에서의 지위와 명예, 권력이 곧 진짜 나 인줄 알고 착각을 한다. 유한한 것들을 진아 인줄 알고 착각을 하고 있으니 불행이 시작된다. 놓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니 집착이 생기고, 집착이 생기면 고통은 수반된다. 이미 생겨버린 것인데 원하지 않는 것은 거부하려고 발버둥을 치니 또 고통이 생긴다. 유한한 것들은 언젠가는 소멸한다. 즉 자기동일시는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야기시킨다. 이들은 남들과 또 끊임없이 자기를 비교한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남들이 가진 것과 자기가 가진 것을 늘 비교하면서 자만감과 위축감의 롤러코스트 를 왔다갔다 한다. 더 가진 자 들에게는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굽신 거리다가도 못 가진 사람들 한테는 아주 심하게 막 대한다.

 

다섯째, 드러내는 순간 의도가 강해져 오히려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온전히 그것에 붙지 못한다. 양궁이나 사격에 나간 선수들 한테 감독은 그냥 하던대로 편하게 하라 고 주문을 한다. 고생을 많이 했으니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의도가 강하면 본래의 순수성을 잃어버린다. 활과 화살과 내가 하나가 되는 절대몰입의 경지가 되어야 하는데, 금메달을 꼭 따야겠다는 생각이 침범하면 그 생각의 크기만큼 몰입의 강도는 떨어진다. 알게 모르게 어깨와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마음도 긴장하고 근육도 긴장해서 실수가 나오기 싶다.

 

대충 대충 살아라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도의 경지로 사는 사람들은 온전히 관계하는 그것에 붙는 사람이다. 밥을 먹으면 밥이 되고, 일을 만나면 일이 된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런 것들은 부수적인 것이다. 일단 나의 순수한 이끌림과 설렘을 찾아, 영혼과 가슴이 뛰는 일에 온전히 붙는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진짜 도인이 아닐까?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25)

 

25. 나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

 

『분화되지 않은 완전한 무엇, 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고, 무엇에 의존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두루 편만하여 계속 움직이나 없어질 위험이 없습니다. 가히 세상의 어머니라 하겠습니다. 나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 그저 라 불러 봅니다. 구태여 형용하라 한다면 크다고 하겠습니다. 크다고 하는 것은 끝없이 뻗어 간다는 것, 끝없이 뻗어 간다는 것은 멀리 멀리 나가는 것, 멀리 멀리 나간다는 것은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도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임금도 큽니다. 세상에는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사람도 그 가운데 하나 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 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습니다.

 

-분화되지 않은 완전한 무엇, 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분리 이전의 세계, 일원론의 절대계, 나와 남의 구별이 없고, 선과 악, 옳고 그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 하늘과 땅 보다 먼저 있는 세계가 바로 도의 세계다. 하늘과 땅 보다 먼저 있은 말씀, , 생명, 그가 바로 도다. 사실 먼저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 시간 개념을 초월한 있고 있음 이 바로 도의 세계다. 하늘과 땅이라는 구별과 상대의 세계, 현상계 이전의 그런 분별되지 않는 그 무엇을 바로 도라고 하는 것이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고, 무엇에 의존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두루 편만하여 계속 움직이나 없어질 위험이 없습니다.-

색성미향촉법(色性味香觸法) 도 없는 공의 세계며, 어떤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없이 있음은 변하지 않지만 그것이 분화되어 나타날 때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 한 번 으로 휘몰아 치고 나면 으로 다시 휘감고 그렇게 조화를 이루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 그저 라 불러 봅니다. 구태여 형용하라 한다면 크다고 하겠습니다.-

생각, 관념의 밖에 있는 도의 세계를 따로 이름 붙일 수 없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인간의 단어는 하나의 틀을 만들고 틀을 만드는 즉시 상대적 세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름을 짓는다면 노자는 라 하고 싶고 또 구태여 그것을 묘사하라고 한다면 크다 고 하겠다고 이야기 한다. 크기 때문에 다 받을 수 있고 다 안을 수 있고, 하나로 아우를 수 있다. 바다가 모든 것을 다 받아서 정화를 하듯이, 공기가 없이 있어 무소부재 이듯이, 도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현상계를 살면서 경험하는 시비분별, 희로애락의 모든 것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크고 높은 산에 올라가면 아래의 사람, , 집들이 너무나 작아서 잘 보이지 않듯이 묘사할 수 없을 만큼 큰 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현상계에서 만나게 되는 색성미향촉법, 시비분별, 희로애락애오욕 등이 너무나도 작아지는 경험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크다고 하는 것은 끝없이 뻗어 간다는 것, 끝없이 뻗어 간다는 것은 멀리 멀리 나가는 것, 멀리 멀리 나간다는 것은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크다는 것은 끊임없이 뻗어나간다는 것인데, 너무 크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 가는 것이기도 하다. 무슨 이야기인가? 무한이 되면 언제, 어디든 있는 무소부재 의 전능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주 빠른 제트기가 있다고 하자. 너무나 빨라서 1초에 지구를 10바퀴 이상 돌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지구상의 어느 지점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도 늘 그 제트기의 소음과 형상을 볼 수 있다. 이 제트기가 더 빨리 돌아서 빛의 속도나 그 이상의 무한의 속도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우주의 어디서나 이 제트기의 존재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무소부재 가 아닌가? 무한이라는 것은 결국 시간과 공간의 초월 의 다른 말이다. 멀리 뻗어 나가지만 늘 같이 있는 논리적 모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되돌아감을 또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일음일양위지도(一陰一陽謂知道) 가 바로 그것이다. 우주의 조화와 질서가 유지되는 원리다. 팽창만 하고 수축만 한다면 질서가 유지될 수 없다. 결국 중용과 중도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한 번 음이면, 한 번 양이다. 하지만 그 음과 양은 이전의 음과 양이 아닌 다른 차원의 음과 양이다. 의식의 성장, 우주진화의 핵심이다. 헤겔의 변증법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되, 이전에 내뱉은 산은 산, 물은 물 과는 다른 경지다. 탕아도 결국 아버지 품으로 되돌아 가지만 예전의 탕아가 아니다. 우리가 이곳 현상계에 나타난 이유, 즉 삶의 의미가 이곳에 있다. 결국 돌아갈 것인데, 왜 자유의지를 주어 이곳 현상계에 떨어지게 했을까? 이 질문을 파고들면 많은 비밀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사람도 그 가운데 하나 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 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습니다.-

도를 닮아 하늘, , 사람이 나타났다. 하늘, , 사람은 그것으로 나타났지만 결국 도와 하나다. 신성의 현현이 바로 사람인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사람은 육적 존재, 짐승적 존재에 머물고 만다. 알아차리는 것이 거듭남이요, 부활이다. 알아차리는 순간 내가 독생자임을, 그 나도 없음이 저절로 드러난다. 사람은 하늘과 땅을 본받을 수 있다. 하늘과 땅도 도를 본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도는 따로 본받을 대상이 따로 없다. 단지 스스로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26)

 

26.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입니다. 조용한 것은 조급한 것의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루 종일 다닐 지라도 짐수레를 떠나지 않습니다. 화려한 경관이 있을지라도 의연하고 초연할 뿐입니다. 만 대의 전차를 가진 나라의 임금이 어찌 세상에서 가볍게 처신할 수 있겠습니까? 가볍게 처신하면 그 근본을 잃게 되고 조급히 행동하면 임금의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문장들을 영적관점에서 또 속적관점에서 해석해보려 한다. 먼저 영적관점에서 살펴보자. 존재계는 현상계의 뿌리다. 혹 기회가 된다면 이슬람의 신비주의의 한 축인 수피들의 수피춤 을 감상해보라. 한쪽 발은 뿌리처럼 땅에 고정시키고 다른 쪽 발을 움직이며 추는 춤이다. 내가 몸을 빌어 현상계에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참나의 근본은 존재계에 있음을 표현한 아름다운 춤이다. 무거운 것, 조용한 것은 모두 이런 공의 세계, 절대계, 존재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나는 해석을 한다. 참나를 경험한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진중하다. 내 몸, 내 직책, 내 권력, 내 생각, 내 집이 진짜 내가 아님을 알기에 나타남과 사라짐의 현상계에서 인연따라 충분히 만나주고는 미련없이 놓을 줄 안다. 더 가지겠다고 발버둥을 치거나 놓지 않으려고 때를 쓰지 않는다. 그런 경박함이 없는 것이다. 참나, 도를 발견한 사람이라고 해서 현상계인 이곳에서 은둔하거나 무위도식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 이유가 있어, 인연이 되어 이곳에 나타났다. 그것은 신의 선물이다. 그러니 하고 순종하면서 온 몸, 온 정신으로 오롯이 살아봐야 한다. 그것이 진정 나를 내려놓고 그 분 뜻대로 사는 삶이 아니겠는가? 거짓 나를 내려놓고 참나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삶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하루에 십분이라도 홀로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것은 진짜의 나와 조우하는 값진 시간이다. 거짓 나를 내려놓고 아버지를 만나는 시간이며, 자비와 사랑으로 하나된 일체감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그러한 힘을 기르면 왔다가 가는 내 생각과 감정의 거짓 나가 쉽게 보일 것이다. 보고 듣고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거짓나 가 진짜 내가 아님을 더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영적 성장의 선순환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다.

 

속적인 의미로도 이 구절은 의미가 있다. 가벼운 사람들은 쉬 믿음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기회주의자로 보인다. 그럴싸한 말은 처음 몇 번은 통할지 모르지만 결국 들통이 나고 만다. 딸랑쇠 처럼 촐랑대며 윗 사람들 한테는 잘 보이려 하고 아랫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막 대한다. 이런 사람들과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며, 이런 사람들과 교우를 맺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이런 사람들 주위에는 까마귀들 처럼 시커먼 정신의 사기꾼들만 득실댄다. 이런 사람들은 리더로 성장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믿음직한 부하가 되기도 힘들다. 좋은 말과 웃음 가득한 얼굴로 사람들을 한때 현혹하는 그런 무리 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조그만 일에도 들썩인다. 조금만 기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처럼 촐랑대고, 조금 슬프다고 온 세상이 다 꺼진 것 처럼 풀이 죽어있다. 이들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신념은 하루 아침에 내팽개 친다. 약고 눈치가 빠르고 스스로는 성공한 인생이라 자부하지만 똑똑한 바보 일 뿐이다. 그릇이 작으니 조그만 물방울만 떨어지면 꽉 차서 더 이상 받지 못하고 자기의 그릇이 그 정도니 다른 사람에게 퍼주기도 힘들다.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27)

 

27. 정말로 잘하는 사람은

 

『정말로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은 달린 자국을 남기지 않습니다. 정말로 잘하는 말에는 흠이나 티가 없습니다. 정말로 계산을 잘하는 사람에겐 계산기가 없습니다. 정말로 잘 닫힌 문은 빗장이 없어도 열리지 않습니다. 정말로 잘 맺어진 매듭은 졸라매지 않아도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도와주고 아무도 버리지 않습니다. 물건을 잘 아끼고, 아무것도 버리지 않습니다. 이를 일러 밝음을 터득함 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요,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옷감입니다. 스승을 귀히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나 제자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지혜롭다 자처하더라도 크게 미혹된 상태입니다.

 

-정말로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은 달린 자국을 남기지 않습니다. 정말로 잘하는 말에는 흠이나 티가 없습니다. 정말로 계산을 잘하는 사람에겐 계산기가 없습니다. 정말로 잘 닫힌 문은 빗장이 없어도 열리지 않습니다. 정말로 잘 맺어진 매듭은 졸라매지 않아도 풀리지 않습니다-

내가 이 문장들을 처음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뇌리에 박힌 단어는 무위 . 행함이 없는 행함의 경지가 바로 도의 경지다. 이 경지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저절로 이뤄지는 것 처럼 보인다. 이 경지에서 벗어나면 행한 이의 의도와 힘과 자국이 드러난다. 정말로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은 바람이다. 그런 바람은 달린 자국을 만들지 않는다. 가는 것 없이 가는 게 또한 도가 아닌가? 정말로 잘 하는 말은 침묵 이다. 도의 경지는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침묵 속에서 온전한 자기를 만날 때 그 세계가 경험된다. 또한 정말로 잘 하는 도의 경지에서는 계산 자체가 필요없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인데 계산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계산은 내 것만 챙기려 하는 이기심에서 나온다. 즉 이미 계산을 한다는 자체가 도의 세계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나와 남이 있고, 더 가지려 하는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잘 닫힌 문은 빗장이 없어도 열리지 않는데, 도의 문이라는 것이 따로 있겠는가? 하나로 모든 것이 통합된 세상에 무슨 문이 필요하겠는가? 문 없는 문이 바로 도의 세계가 아닐까? 문을 만든다는 것은 분별을 한다는 뜻이다. 좋음과 나쁨, 선함과 악함, 옳고 그름을 가르는 에고의 마음은 자주 문과 벽을 만든다. 하지만 도의 세계는 경계가 없다. 그러니 사실 문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다. 도의 약속이란 신적약속이다. 어느 누가 감히 그 약속의 매듭을 풀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신적매듭이다. 결혼식의 주례사와 같이 신적매듭은 감히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없음이다.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도와주고 아무도 버리지 않습니다. 물건을 잘 아끼고, 아무것도 버리지 않습니다. 이를 일러 밝음을 터득함 이라 합니다.-

성인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분별이 애당초 없다. 태양이 사람을 가리는가? 비가 사람은 나누는가? 분별없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요, 자비다. 관찰되는 대상도, 관찰하는 대상도 따로 없다. 모두 하나의 세상이다. 그러니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다시 나누겠는가? 내가 빛이요, 생명이듯, , 우리 또한 하나의 빛이요, 생명임을 터득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부활이요, 거듭남이 아닐까? 이를 노자는 밝음의 터득 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 적으로는 빛으로의 거듭남 불교적으로는 깨닫고 보니 부처 아닌 것이 없는 세상 인 것이다.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요,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옷감입니다.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이라는 것이 과연 무슨 말일까? 선한 사람이 돋보이는 것은 선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거지들은 아주 당당하다고 들었다. 전혀 비굴함이라고는 없다. 그 이유인즉, 내가 너에게 구걸을 함으로써 너가 선업을 베풀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돈을 주는 너가 구걸을 하는 거지인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식이다. 선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제공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좀 더 발전해 보자. 선한 사람만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일까? 선하지 않는 사람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무엇인가를 더 많이 배운다. 선하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과 그 결과를 보고 우리는 저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라는 것을 배운다. 이 경우 과연 누가 누구의 스승인가? 하지만 노자가 진짜로 이 문장을 쓴 이유는 보다 더 차원높은 의식에 있지 않을까? 선인과 악인의 구분이 아예 없는 세계 말이다. 선과 악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도의 세계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예수의 말씀처럼 과연 누가 죄를 정의할 수 있는가? 너와 내가 하나인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다 아가페적 사랑이요, 자비다. 무시무시한 살인자 앙굴리 말라 의 이야기를 아는가? 그는 상처로 인해서 1,000명의 사람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는다. 999명의 사람을 죽이고 마지막 1명을 찾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살인자를 피하기 바빴다. 그가 사는 곳에 부처는 태연하게 걸어간다. 잠깐 동안이지만 당신이 깨달은 부처라고 생각해 보라.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하나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치자. 나와 남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거지가 배고프면 내가 배가 고프고 아이가 신음을 하면 그게 나의 고통처럼 느껴지는 깨달음의 경지에 있다고 치자. 999명의 사람을 죽이고 나를 죽이기 위해서 오는 앙굴리 말라를 보는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 연민과 눈물 이 나지 않겠는가? 육적죽음을 초월한 경지에서 무엇이 두려울까? 오직 아가페적 사랑의 마음으로 그 살인자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보담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부처는 텅빈 빈배였다. 호숫가에 빈배가 떠 있다.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아서 뭔가에 부딪혔다. 그런데 사람도 없는 빈배였다. 그 빈배를 보고 고함을 질러봐야 소용없다. 부처는 텅 비어 있다. 비었기에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런 부처의 사랑이 살인마를 전율시켰다. 노자도 예수도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결국 이런 뜻이 아닐까? 자주 잊어버리고 산다. 우리가 그런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매일 참 자아와의 교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Self Remembering 이다.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28)

 

28.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유지하십시오. 세상의 협곡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협곡이 되면, 영원한 덕에서 떠나지 않고, 갓난아기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흰 것을 알면서 검은 것을 유지하십시오. 세상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본보기가 되면, 영원한 덕에서 어긋나지 않고, 무극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영광을 알면서 오욕을 유지하십시오. 세상의 골짜기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골짜기가 되면, 영원한 덕이 풍족하게 되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쪼개면 그릇이 됩니다. 성인은 이를 사용하여 지도자가 됩니다. 정말로 훌륭한 지도자는 자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흰 것과 검은 것, 영광과 오욕이 따로 있지 않다. 모두 하나다. 그것이 도의 세계다. 무이, 무극, 일원, 하나, 천국, 에덴이다. 이렇게 사는 도의 사람은 세상의 협곡이 될 것이다. 세상의 협곡은 바다다. 가리지 않고 다 받아준다. 그리고 정화를 시키며 다시 돌려준다. 그렇게 세상을 움직인다. 진짜로 큰 리더요, 임금이다. 세상의 협곡은 스스로 움직여 함께 움직이게 한다. 먼저 모범을 보이고 길을 제시하며 정체되어 있지 않다. 때로는 고체, 액체, 그리고 기체로 때에 따라서 자유자재로 변한다. 도의 사람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아기의 모습이다. 뒤돌아 아기가 된 사람이 천국의 사람이다. 애기는 사랑의 기운이요, 사랑의 그릇이다. 그래서 애기 . 사랑 그 자체인 것이다. 또한 애기는 성별이 없다. 틀 없음, 내려놓음, 일원의 하나됨의 존재다.

 

영광을 알면서 오욕을 유지하라고 했다. 영광과 오욕이 따로 있지 않다. 무엇을 비추냐에 따라서 영광이 오욕이 되기도 하고, 오욕이 영광이 되기도 한다. 내 개인적 경험으로는 오욕을 당했을 때 훨씬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극단은 위험하다. 선악시비를 나누고 선과 옳음만 취하려 해서는 안 된다. 빛과 어둠은 하나인데 빛 만을 취하겠다는 어리석음이다. 빛이 있기 때문에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선과 옳음만 취하려 하는 순간 집착이 생기고, 이어서 고통이 시작된다. 달라 붙어 안 떨어지려 하고 안 받으려고 거부를 한다. 다 받고 다 줘야 한다. 그게 바로 자유자재다. 안 떨어지려 하고 안 받으려 하면 현상계에서 산다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이는 잘 만나고 잘 헤어짐을 의미한다.

 

도는 또한 다듬지 않은 통나무다. 다듬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자유자재다. 때와 장소에 맞게 가장 합당한 것으로 사용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틀이 없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현상계에 살러 왔으면 통나무를 쪼개어 그릇이 되기는 해야 한다. 물론 진짜 자기가 통나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진정 여기 지금 나 없이 있음, 이곳 나 되어감 을 사는 사람이다. 통나무가 쪼개어져 그릇이 되었다. 공즉시색이 아닌가? 그릇은 경험의 도구다. 그 안에 성장의 섭리와 사랑이 녹아 있다. 그러니 잘 헤아려 가장 합당한 그릇으로 진짜 자기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잘 사용되어지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통나무, 다시 흙으로, 다시 아버지, 다시 어머니 품으로 말이다. 살아서 그것을 깨닫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진짜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요, 빛임을 경험한 사람이 되자.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29)

 

29. 외경의 자세

 

『세상을 휘어잡고 그것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내가 보건대 필경 성공하지 못하고 맙니다. 세상은 신령한 기물,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하는 사람 그것을 망치고, 그것을 휘어잡으려는 사람 그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사는 앞서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뒤따르는 것도 있고, 숨을 천천히 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빨리 쉬는 것도 있고, 강한 것이 있는가 하면 약한 것도 있고, 꺾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떨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인은 너무함, 지나침, 극단 등을 피합니다.

 

먼저 성공에 대한 이야기부터 좀 해야겠다. 뭐가 과연 성공인가? 우리는 성공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자동으로 어떤 사진들을 떠 올린다. 수입차를 몰고, 고급스러운 주택에 살고, 수억 대의 연봉 등등 말이다. 그런데 진짜로 성공이란 무엇일까? 우선 성공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천편일률적일까? 학교성적, 대학순위, 연봉순위, 주택가격 등에 따라서 줄서기를 해서 앞줄에 있는 사람은 다 성공자 일까? 철이 들기 시작하면 성공이라는 것에 대한 관념의 틀이 유연해진다. 그리고 개개인 마다 다 성공의 정의는 다르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나는 그래도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할 만한 성공의 정의를 참나 만족 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기만족이기는 하지만 가짜 자기가 아닌, 진짜 자기가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을 성공이라 이야기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좀 그럴듯하게 표현해 볼까? 기독교적으로는 하나님의 소명대로 사는 삶, 내가 그분의 독생자임을 알고 독생자의 삶을 사는 것, 가짜 나를 비워 그분 뜻대로 사는 삶 이 바로 그것이다. 불교적으로는 깨달음의 삶, 참나로 사는 삶이 아닐까? 순수열정, 순수에너지, 순수기쁨이 샘 솟는 충만한 삶인 것이다. 노자는 이를 도를 아는 삶 이라 표현했다. 거짓 내가 없어지는 삶,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삶이다. 그런데 뭔가 해보겠다 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 해 보겠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생각나는가? 일단은 나를 내세움 이 있고, 그 다음은 강한 의도와 힘이 들어감 이 있다. 이때의 나는 에고적 나, 거짓 나 . 강한 의도를 가지며 거짓 나를 내세우니, 그에 상응하는 상대방이 생기고 갈등이 유발된다. 조화와 중용이 무너진다. 힘이 들어가니 사는 게 힘들다 고 한다. 이것은 성공이 아니다. 돈이 많고 수입차를 몰고 다녀도 순수한 충만감과 삶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현저히 떨어진다. 걱정, 불안, 이기심, 욕심, 애착 등의 거짓 나가 진짜 나를 휘몰아 버린다. 진짜 나를 잃어버리기 시작할 때 왠지 공허함이 밀려온다. 이것이 과연 성공인가? 돈을 벌지 마라는 게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오해다. 세속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뿌리를 잊어버리지 않고 그 기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여기 의 참 존재로 늘 깨어있으며, 이곳 현상계에서 진짜 내가 할 일을 목숨걸고 온전히 몰입하는게 정말 성공이다. 나도 없고 거룩한 행위만이 남는다. 내가 없으니 남도 없고 온전히 하나된 기쁨 충만의 삶이다.

 

자연을 잘 살펴보자. 인간의 의도함이 없이 피어난 야생화들을 잘 살펴보라. 화려한 맛은 없지만 언제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각자 자기의 색깔과 향기를 가지되 전체적인 조화도 멋지다. 거친 비바람 속에서 묵묵히 피어난 그 꽃들의 향기는 또 얼마나 진한가? 그런데 이에 반해서 놀이동산에서 인간들의 의도로 가꾸어진 꽃들을 보라. 처음 보면 그 화려함에 탄성을 지른다. 그런데 얼마 안 지나서 질리기 시작한다. 화려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조화는 없다. 각자 자기 잘 난 맛에 피어난 것 처럼 한껏 멋 부리는데만 열심이다. 그리고 겉보기와는 다르게 아주 약하다. 끊임없이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심지어 약품을 주지 않으면 이내 시들어 버린다. 당신은 꽃이라면 어떤 꽃인가?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30)

 

30. 군사가 주둔하던 곳엔 가시엉겅퀴가

 

『도로써 군주를 보좌하는 사람은 무력을 써서 세상에 군림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무력을 쓰면 반드시 그 대가가 돌아오게 마련이어서 군사가 주둔하던 곳엔 가시엉겅퀴가 자라나고 큰 전쟁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따르게 됩니다. 훌륭한 사람은 목적만 이룬 다음 그만둘 줄 알고, 감히 군림하려 하지 않습니다. 목적을 이렀으되 자랑하지 않고, 목적을 이뤘으되 뽐내지 않고, 목적을 이뤘으되 교만하지 않습니다. 목적을 이뤘으되 할 수 없어서 한 일, 목적을 이뤘으되 군림하려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나 기운이 지나치면 쇠하게 마련, 도가 아닌 까닭입니다. 도가 아닌 것은 얼마가지 않아 끝장이 납니다.

 

훌륭한 사람은 목적을 이룬 다음 그만 둘 줄 안다. 그리고 목적을 이뤘지만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목적을 이룬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뽐내며, 교만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최선을 다해서 뛰었지만 사심(거짓 나, 에고) 이 없이 그것을 즐겼기 때문이다. 거짓의 자기를 내려놓고 섭리를 이행했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신께로 돌리기 때문이다.

 

나를 온전히 비워 신의 숨이 들어가 아름다운 소리가 나게 했기 때문이다. 나라는 이미지의 타파요, 나도 없고 남도 없이 오직 행위만 존재하는 거룩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없기 때문에 애당초 내가 잘났다는 마음도 들지 않는다. 뽐내고, 자랑하고, 교만하다는 것은 다 거짓 내 가 있기 때문이다.

 

거짓 내가 있기 때문에 일을 해도 힘이 들어가고 자기 욕심을 부려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만든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한테 굽실 거리는 것도 두렵기 때문이거나 뭔가 이익을 보려하기 때문이지, 경외심에서 그러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런 아부가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지 않는다. 나를 강하게 드러내므로 상대방도 불편하고 언짢은 마음이 가득하다. 다만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이의 성과가 오래 갈 리가 없다. 누군가는 숨어서 칼을 갈고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31)

 

31. 무기는 상서럽지 못한 것

 

『훌륭하다는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 사람이 모두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도의 사람은 이런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군자가 평소에는 왼쪽을 귀히 여기고, 용병 때는 오른쪽을 귀히 여깁니다.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 군자가 쓸 것이 못 됩니다. 할 수 없이 써야 할 경우, 조용함과 담담함을 으뜸으로 여기고 승리하더라도 이를 미화하지 않습니다. 이를 미화한다는 것은 살인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살인을 즐거워 하는 사람은 결코 세상에서 큰 뜻을 펼 수 없습니다. 길한 일이 있을 때는 왼쪽을 높이고, 흉한 일이 있을 때는 오른쪽을 높입니다. 둘째로 높은 장군은 왼쪽에 위치하고, 제일 높은 장군은 오른쪽에 위치합니다. 이는 상례로 처리하는 까닭입니다. 많은 사람을 살상하였으면 이를 애도하는 것,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이를 상례로 처리해야 합니다.

 

생명이 소중한 것은 모르는 바가 아니나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일 전쟁이라도 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해 본 적이 꽤 된다. 특히나 전문연구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치다 보니 40이 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예비군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고, 교육을 받고 오는 날이면 생명존중 사상 가족의 안위 간의 갈등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쯤은 늘 생각하는 것이다.

 

내 한 목숨 버리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만일 우리 가족에게 화가 미친다면 그것을 보는 것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혼절하지 않을까 싶다. 내 목숨을 담보로 우리 가족이 무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국가의 대의와 관련된 일과 가족의 안위가 배치가 된다면 이 또한 힘든 선택이 될 것은 자명하다. 막상 닥쳤을 때는 어떻게 할 지 장담은 할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국가의 대의가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도를 설파하는 노자는 전쟁과 살상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할 수 없이 살인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을 즐기거나 전쟁을 통한 공로에 대해서 뻐기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설파한다. 조용함과 담담함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 왼쪽, 오른쪽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중국에서는 왼쪽은 양, 남성, 하늘, 동쪽, 생명이며 오른쪽은 음, 여성, 대지, 서쪽, 죽음을 나타낸다. 즉 평상시에는 왼쪽이 우선이지만 전쟁에서는 죽음과 관련되기 때문에 오른쪽이 우선시 되는 것이다. 전쟁에서의 승리에 도취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죽이게 되었지만 모든 절차를 상례에 맞게 치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사람이 사실 무슨 죄가 있는가? 어쩔 수 없이 꼭두각시 놀음에 총칼을 들고 서로를 죽여야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그렇게 하다가 동료가 죽고, 사랑하는 가족이 죽으니 적의감이 생겨 또 죽이는 악순환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던가? 인디언들은 꼭 필요할 때만 사냥을 하고, 이렇게 양식으로 와 준 그 동물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고 했다. 하물며 사람일 것인가? 어떤 인연에 의해 적으로 만나 서로 총칼을 겨누게 되었지만 빛이요, 생명의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어찌 없을 것인가? 그러니 애도를 해야 할 것이다. 내 행동을 뒤돌아 보며 돌아간 이의 넋을 기릴 줄 아는 것, 그것이 군자의 삶이다.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32)

 

32.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도는 영원한 실재,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이를 다스릴 자 세상에 없습니다. 임금이나 제후가 이를 지킬 줄 알면, 모든 것이 저절로 순복할 것이요, 하늘과 땅이 서로 합하여 감로를 내릴 것이요. 명령하지 않아도 백성이 스스로 고르게 될 것입니다. ‘다듬지 않은 통나무가 마름질을 당하면 이름이 생깁니다. 이름이 생기면 멈출 줄도 알아야 합니다. 멈출 줄을 알면 위태롭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세상이 도로 돌아감은 마치 개천과 계곡의 물이 강이나 바다로 흘러듦과 같습니다.

 

-도는 영원한 실재,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이를 다스릴 자 세상에 없습니다. 임금이나 제후가 이를 지킬 줄 알면, 모든 것이 저절로 순복할 것이요, 하늘과 땅이 서로 합하여 감로를 내릴 것이요. 명령하지 않아도 백성이 스스로 고르게 될 것입니다.-

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공기나 바다가 드러나는 것을 봤는가? 언제나 바탕이 될 뿐이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던가? 공기가 없으면 불과 몇 분 이내에 많은 생명체들이 죽는 것과 같이 소중하지만 드러나지 않아서 마치 없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진정 도의 세계다. 다시 한 번 무위의 위 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듬지 않은 통나무도 마찬가지다. 이름 붙이지 않고 쓰임새도 정해져 있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자재의 제목이다. 없이 있음이 바로 도의 세계가 아닌가? 누구와도 만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전지전능인 것이다. 이렇게 보잘 것 없지만 도를 다스릴 자는 아무도 없다. 도는 스스로 존재할 뿐, 누구의 간섭을 받지도 않을 뿐더러 받을 이유도 없다. 그냥 있음이다. 그냥 있지만 다른 것들의 바탕이 되고 다른 것들이 움직이도록 하는 근원의 힘이 있다. 임금이나 제후가 도를 알고 백성을 다스리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왕도정치요, 철인정치다. 조화와 중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과 자비다. 나서지 않고 내가 힘 있다고 뻐기지 않고 없이 있는 듯 저절로 잘 굴러가게 다스린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 ‘다듬지 않은 통나무가 마름질을 당하면 이름이 생깁니다. 이름이 생기면 멈출 줄도 알아야 합니다. 멈출 줄을 알면 위태롭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세상이 도로 돌아감은 마치 개천과 계곡의 물이 강이나 바다로 흘러듦과 같습니다.-

도를 알고 도를 기억하지만 우리의 몸은 분별의 세계, 현상의 세계에서 산다. 그 안에서 이름을 가지고, 직업을 가지고, 관계를 가지며 분리된 삶을 살아간다. 도의 세계가 중요하니 현상계의 세계는 중요하지 않다고 내 던지면 안 된다. 다 이유가 있어서 이곳 현상계에 인연 따라 나타난 게 아닌가? 그리고 현상계는 누차 이야기 했듯이 존재계, 즉 참나를 발견하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 하늘, 하나님이 나에게 소명한 일을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찾고, 찾은 일을 자기의 모든 혼과 백을 실어 최선으로 다해서 살아야 한다. 다른 말로는 순수한 기쁨과 설렘을 찾아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을 위에서는 이름이 생긴다 라는 메타포로 나타내고 있다. 이름은 생기되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분명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멈춘다는 것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 인연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세계가 바로 현상계다. 그 안에서 나는 최선으로 잘 관계하고 놓아야 할 때 놓아주면 된다. 만나야 할 때를 잘 알아차리고, 정말로 다 해서 만나고, 헤어져야 할 때 잘 놓아주는 것이 바로 멈춤을 아는 삶이다. 그런데 여기에 욕심과 집착이 들어가면 놓아주어야 하는데 영원히 가져갈 것 처럼 놓지 않는다. 자기의 젊음, , 명예, 돈에 착 달라붙어 있다. 유한한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있다. 이 지구별에서의 죽음으로 그러한 것들을 모두 없어진다. 그런데 그것에 집착을 하고 미리 걱정을 하면 본격적인 고통이 시작된다. 이를 노자는 경계하는 것이다. 무릇 도는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바다나 계곡의 물과 같다. 바탕으로 존재하여 다른 것들을 빛나게 하고, 스스로 움직여 다른 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진정한 선생이다. 이 뿐인가? 스스로 더러움을 다 받아 정화를 시켜 준다. 큰 사랑을 가진 어미의 마음이 아닌가? 또한 액체로만 있지 않고 때가 되어 기체가 되어 대류를 일으키고 또 필요할 때는 얼음이 되기도 한다. 고정된 것이 아닌 변화의 우주원리를 모두 다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도의 원리다.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33)

 

33. 자기를 아는 것이 밝음

 

『남을 아는 것이 지() 라면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입니다. 남을 이김이 힘있음이라면 자기를 이김은 정말로 강함입니다. 족하기를 아는 것이 부유함 입니다. 강행하는 것이 뜻있음 입니다. 제자리를 잃지 않는 것이 영원입니다. 죽으나 멸망하지 않는 것이 수()를 누리는 것입니다.

 

-남을 아는 것이 지() 라면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입니다.-

남을 아는 것은 지식 이다. 상대적인 지식이고, 살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다. 하지만 자기를 아는 것은 이다. 나는 빛이고, 생명이고, 부활임을 아는 것이다. 깨침이요, 깨달음이다. 거짓 나를 벗어던지고 진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평생 내가 누구인지? 도 모른 체, 먹고, 살기 바빠서 허둥대며 살다가 죽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연예인 누구의 대소사 까지 다 알면서 정작 자기는 누구인지 모른다. 안타깝고, 애닯다.

 

-남을 이김이 힘있음이라면 자기를 이김은 정말로 강함입니다.-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들을 인터뷰 해보면 상당수가 남을 의식하기 보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데 집중했다 는 말을 한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내 안에 올라오는 감정들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불안, 두려움, 공포심, 수치심, 분노와 같은 감정들이 올라올 때, 이런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만나주고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런 감정들이 어느 새 주인이 되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몸이 긴장되고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의견충돌이 일어날 때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휩싸이는 쪽이 십중팔구는 협상에서 실패하고 만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온화한 미소로 여유를 가지고 대하는 사람은 부드러운 듯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존재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의 감정 너머를 이미 꿰뚫어 보고 있다. 상대가 잠깐 정신없는 사이 비수의 칼을 정확하게 상대의 아킬레스건에 꽂아버린다.

 

-족하기를 아는 것이 부유함 입니다. 강행하는 것이 뜻있음 입니다.-

부자란 족한 사람이다.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가끔씩 산에 올라 너럭바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양 풍족함을 느낀다. 매끈한 수입차를 몰고 년 수억 원의 수입을 버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부유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 주변에도 그런 지인들이 몇 분 있는데, 그 분들과 이야기 해보면 그들도 똑같이 돈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버는 만큼 씀씀이가 커지고, 한 번 커진 씀씀이는 다시 줄이기는 힘들다보니, 그 생활을 유지하는데 힘겨워한다. 또한 그들도 평생 그러한 수입을 얻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언제 이 수입이 끊기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집착이 무서운 것이다. 바라되 집착하지 않음이 진정 무소유요, 부자의 삶이다.

 

대기업의 회장들이라고 돈에 대해서 자유로울까? 내가 그들이 안 되어 봤고, 또 만나서 물어본 적이 없기에 뭐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또 나름대로의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IT 기업중의 하나인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의 경우도 늘 미래의 먹거리 발굴에 노심초사한다. 그들의 선택 하나 하나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 특히 세계적인 대기업도 불과 10년 이내에 망할 수 있는 급변의 시대에서는 선택과 결정을 위한 심리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제자리를 잃지 않는 것이 영원입니다. 죽으나 멸망하지 않는 것이 수()를 누리는 것입니다.-

제자리 라는 것은 참나 의 자리를 말한다. 비록 몸은 현상계에 있지만 참나 를 기억하는 Self Remembering 의 삶을 살아야 겠다. 요한복음에서도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라고 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영생의 삶이다. 내 몸이 나인가? 내 명예, 이름, 역할, 지위가 나인가? 이런 것들은 인연따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없이 있음의 참나 를 우리는 늘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내가 부처임을 깨닫는 삶, 내가 아버지의 독생자임을 아는 삶, 바로 이것이 도인의 삶이다. 없이 할래야 없이 할 수 없는 영생의 삶이다.

 

과학도가 바라본 도덕경(34)

 

34. 큰 도가 이쪽 저쪽 어디에나

 

『큰 도가 이쪽 저쪽 어디에나 넘쳐 있음이여. 온갖 것 이에 의지하고 살아가더라도 이를 마다하지 않고, 일을 이루고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온갖 것 옷 입히고 먹이나 그 주인 노릇 하려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욕심이 없으니 이름하여 작음이라 하겠습니다. 온갖 것 다 모여드나 주인노릇 하려 하지 않으니 이름하여 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스스로 위대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큰 도가 이쪽 저쪽 어디에나 넘쳐 있음이여. 온갖 것 이에 의지하고 살아가더라도 이를 마다하지 않고, 일을 이루고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온갖 것 옷 입히고 먹이나 그 주인 노릇 하려 하지 않습니다. -

큰 도는 이쪽 저쪽 편가르지 않는다. 모두 다 하나로 있음이다. ()이나 또 그러하기에 꽉 차 있다. 시간, 공간도 없지만 굳이 현상계에서 비유하자면 공기나 물과 같다. 온갖 것 이에 다 의지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결코 자기 잘난 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늘 이런 공기의 소중함을 망각한다. 중요하기로 따지면 공기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1시간 공급하는 대가로 억만금을 요구해도 돈 있는 사람들은 자기 목숨 연명하기 위해 전 재산을 다 바칠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온갖 것 옷 입히고 먹이지만 결코 주인 노릇 하는 법이 없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해 있다. 바다를 봐도 마찬가지다. 모든 오물이 흘러서 바다로 온다. 바다는 다 받아준다. 받아, 받아, 받아 주니 바다다. 군말없이 정화시켜 다시 인간 들한테 돌려준다. 바다는 지구를 깨끗하게 하고, 생명을 기르고 또 기른 것을 나눠준다. 그렇더라도 우리한테 돈을 내라, 자리세를 내라 하지 않는다. 묵묵히 있을 자리에 있을 뿐이다.

 

- 언제나 욕심이 없으니 이름하여 작음이라 하겠습니다. 온갖 것 다 모여드나 주인노릇 하려 하지 않으니 이름하여 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스스로 위대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욕심이 없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아서 우선은 작아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이 여럿 모여있으면 욕심있고, 목소리 큰 사람들이 대장을 한다고 드러나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진정 큰 사람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왜 그런가? 자기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욕심이 있기 때문에 늘 누군가와 부딪힌다. 그리고 그들이 잘 대해주는 것은 다 개인적인 사심 때문이고, 그러한 이해관계가 떠나면 끝이라는 것을 상대편도 너무나 잘 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은 진짜 큰 주인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진짜 큰 사람들도 있다. 유비와 같은 사람이다. 유비가 잘난 공명을 부하로 둘 수 있는 것도 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큰 덕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을 다 먹이나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어떤가? 누구나 이런 사람을 사랑하고 떠 받들려고 할 것이다. 내 욕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도의 세계 를 벗어나 이원론에 빠져있다는 뜻이다. 본디 나와 남이 따로 없는데, 나를 가정하고 또 나의 욕심을 가지는 순간, 나와 상대, 선과 악, 시와 비, 애와 증이 갈리게 된다. 그런 욕심들 끼리 서로 헐뜯고 비방하기 시작한다.

 

살다보면 참 쉽지는 않다. 자기 욕심을 비운다는 것이 말이다. 또 현대사회는 이러한 욕심을 적극 장려한다. 하지만 자기 욕심을 내려 놓고 더 큰 섭리를 따르다 보면 삶이 달라진다. 일단 일희일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든든해진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생각은 없어지고, 섭리의 일이 나를 통해서 행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에너지의 원천에 접촉되어 신바람이 나고, 열정이 계속 넘친다. 순수한 기쁨이 뭔지도 알게된다. 무엇보다 삶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는게 아닌 삶 자체에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니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는 가장 합당한 것임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뭐든지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탈이 날 것이 없다. 정신병은 현실은 이미 벌어졌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긴다. 이미 일어나 버렸는데 안 받겠다고, 못 받겠다고 발버둥을 치니 몸이 도저히 못 견디는 것이다. 일단은 미쳐야 몸이 사니까 살려고 미치는 것이다.

 

나를 텅빈 배처럼 내려놓고 섭리에 맡기고, 에너지의 원천에 접촉되어 신바람 나게 한 바탕 달리다 보면 분명 어떤 결과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고맙고 사랑스럽고 감사해지는 것이다. 나 되어가는데 가장 합당한 것임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산다는 것은 나를 비워 더 큰 나의 순수욕망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린대로 목숨 다 바쳐 달려가며, 주신 모든 것에 전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바로 도인의 삶이 아닐까?

 

광호 (khajoh@naver.com)

[주제어]:노자, 도덕경, 인문고전, 자몽인, 닥터안, 안광호

 [리뷰어 소개]

안광호 박사는 포항공대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5년 동안 통신용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5제품을 양산하여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세계최초로 CDMA1 Chip Transceiver 를 개발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지식경제부산하 국가연구소인 '전자부품연구원'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기획하고, 선도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잘산다는 것이 뭘까? 에 대한 순수한 탐구욕을 가지고 있으며과학의 바탕위에 인간의 심리와 의식세계를  통합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글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알아차림, 매일경제신문사], [소프트마인드, 비전과리더십], [마음세수, 예문당], [삼성붕괴시나리오, 다산북스], [열다섯 살 꿈의 시크릿, 미래지식], [긍정, 원앤원북스],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도전, 에이원북스], [6 시그마로 부자아빠 되기, 네모북스], [행복한 사과나무 이야기, 아름다운사회] 가 있으며, [꿈과 성공이 있는 명품인생] 이라는 오디오북을 발간하였습니다. 2007년 헤럴드 경제가 주최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사람’ 20인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집필 및 칼럼에 대한 문의 및 의뢰는 khajoh@naver.com, 홈페이지: www.akh.co.kr, 블로그: www.doctorahn.co.kr,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hoahn1, 트위터:www.twitter.com/kwanghoahn

 

[과학과의 통합을 위한 그의 독창적 행보]

l  6 Sigma Black Belt 획득

l  STRONG(직업흥미프로그램) 전문가 획득

l  한국심리학회 MBTI 전문가 획득

l  에니어그램 수련

l  Habiram Sprituality Training Course (영성심화수련)

l  위빠사나 명상 수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설정

트랙백

댓글

네덜란드 여행기_자몽인_안광호

분류없음 2012.10.02 21:30

 

네덜란드 이야기

학회차 네덜란드를 잠깐 다녀왔다. 네덜란드 하면 무엇이 먼저 떠 오르는가? 풍차와 제방, 운하, 필립스, 나나무스꾸리, 낙농업, 튜울립 등이 떠 오를 것이다. 2011년 기준으로 네덜란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5만불을 상회하는 강소 선진국이다. 내가 짧게 느낀 네덜란드인의 특징은 부드럽고 친절한 독일인이었다. 신체적으로도 체격이 우람했는데, 출장중에 잠깐 자전거를 빌려보니 남성용 자전거의 안장을 모두 내려도 높이가 꽤 높았다. 돌아와 조사해보니 2010년 기준으로 네덜란드 남자 평균키가 185cm로 세계 1위 라고 한다.

 

네덜란드와 우리나라는 인연이 좀 있다. 하멜과 박연(벨테브레) 이 바로 네덜란드인이다. 사실 17세기는 네덜란드가 최고의 전성을 누리던 시기였다. 그들은 바다를 가진 잇점을 최대한 살려 일찍 해양무역등에 눈을 떴다. 17세기 무렵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그들은 식민개척에 열을 올렸다. 애당초 그들의 관심은 일본이었으나 제주도 근방을 지나다가 표류하여 조선에 잡히게 되었다. 이중 네덜란드인 벨테브레는 조선에 귀화를 하여 박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하멜은 네덜란드로 탈출을 하여 하멜표류기라는 기행문을 남기게 된다.

 

그들은 외국인들 한테 친절하다. 어차피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민족이다. 자국의 언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에 정통하다. 나라는 작고 또 습지가 많은 땅이지만 제방을 쌓고 운하를 만들어서 열악한 자연환경을 슬기롭게 이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꽤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민족이라 할 수 있겠다. 문명사를 보더라도 네덜란드 처럼 척박한 환경을 가지고 태어난 민족들의 정신은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살아있었다. 그런 민족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작은 나라가 한때는 세계를 호령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내가 유독 친절하고 합리적인 민족이라고 느낀 것도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네덜란드인의 수용성과 합리성은 동성결혼, 매춘의 합법화, 대마초의 허용에서도 나타난다. 중독성이 약한 대마초를 허용함으로써 그들은 더 강한 마약으로의 유혹을 차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매춘의 허용도 같은 맥락이다. 매춘을 공식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얻게되는 사회적 공익들을 먼저 계산한 것이다. 가장 번화한 쇼핑거리에 버젓이 하나의 상품처럼 진열되어 있는 매춘녀들의 모습은 내 눈에는 꽤 낯설어 보였다. 지나가는 남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매춘녀들과 서서 얼굴에 웃음을 띄면서 대화를 나누기까지 했다.

 

아주 짧은 여행이었기에 그 나라에 대해서 적는다는 것은 아주 조심스럽지만 그 짧은 여행에서도 느껴지는 강한 인상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그들의 강한 색깔이라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합리성, 효율성, 지혜, 긍정적,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강하게 나를 이끌었다. 갑자기 조선시대 박연이라는 네덜란드 인은 상당히 이질적인 문화였을 조선에 어떤 매력을 느꼈기에 귀화를 결정했을지 궁금해졌다. 동일한 네덜란드인인 하멜은 끝까지 저항을 하며 결국 탈출을 했지 않은가? 짧은 기간이지만 그들을 접하고 나니 오히려 하멜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경상도 만한 땅덩어리, 그것도 척박한 습지뿐이었던 나라에서 한때 전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네덜란드인들, 그들의 모험심과 도전정신 그리고 그런 역사를 통해서 일찍 세계화에 눈뜬 사람들의 후예를 나는 만나고 왔다. 자국의 언어가 소중하지만 그것만 집착하기 보다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는 수용과 관용의 정신이 있는 나라, 그러면서도 렘브란트, 고흐등 거장들을 배출하고, 플랑드로 학파를 이끌면서 세계 회화사에 큰 족적을 남길만큼 문화적 자부심도 갖추고 있는 작지만 강한 네덜란드를 만난 것이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들을 살펴본다. 조금은 더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글로벌한 사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하며, 짧지만 깊게 경험했던 네덜란드에서의 일주일에 대한 소회를 나름 정리하려 한다.

안광호

[주제어] 네덜란드, 하멜, 박연, 암스테르담, 고흐, 램브란트, 플랑드로

khajoh@naver.com

[칼럼니스트 소개]

안광호 박사는 포항공대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5년 동안 통신용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5제품을 양산하여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세계최초로 CDMA1 Chip Transceiver 를 개발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지식경제부산하 국가연구소인 '전자부품연구원'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기획하고, 선도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잘산다는 것이 뭘까? 에 대한 순수한 탐구욕을 가지고 있으며과학의 바탕위에 인간의 심리와 의식세계를  통합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글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알아차림, 매일경제신문사], [소프트마인드, 비전과리더십], [마음세수, 예문당], [삼성붕괴시나리오, 다산북스], [열다섯 살 꿈의 시크릿, 미래지식], [긍정, 원앤원북스],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도전, 에이원북스], [6 시그마로 부자아빠 되기, 네모북스], [행복한 사과나무 이야기, 아름다운사회] 가 있으며, [꿈과 성공이 있는 명품인생] 이라는 오디오북을 발간하였습니다. 2007년 헤럴드 경제가 주최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사람’ 20인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컨설팅, 코칭, 집필 및 칼럼에 대한 문의 및 의뢰는 khajoh@naver.com, 홈페이지: www.akh.co.kr, 블로그: www.doctorahn.co.kr,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hoahn1, 트위터:www.twitter.com/kwanghoahn

 

[과학과의 통합을 위한 그의 독창적 행보]

l  6 Sigma Black Belt 획득

l  STRONG(직업흥미프로그램) 전문가 획득

l  한국심리학회 MBTI 전문가 획득

l  에니어그램 수련

l  Habiram Sprituality Training Course (영성심화수련)

l  위빠사나 명상 수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설정

트랙백

댓글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_안광호_자몽인

분류없음 2012.09.10 18:30

 

 

아는 것 으로부터의 자유

이런 제목의 책이 있다. 인도의 영성가인 크리슈나무르티가 적은 책이다. 우연히 칼럼제목을 고르다가 나도 모르게 이 책의 제목이 떠 올랐다. 아는 것, 그리고 알아야 된다는 생각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고백하자면 나 또한 한때는 이 명제 앞에서만은 지독히 자유롭지 못했다.

 

나는 에니어그램 5번이다. 5번은 지식의 진공청소기라 불린다. 뭔가 하나를 시작하려 해도 미리 웬만큼은 다 알고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제품을 사도 매뉴얼부터 꼼꼼하게 읽어보고서야 전원을 켜는 그런 천성을 가진 유형들이다. 지적인 충족감을 즐기기 때문에 역으로 말하면 자기가 모르고 있다는 명제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5번 유형들은 적당한 거리 두기 상황에서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끼며,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나타나는 유형이다.

 

나도 한 때는 정말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다. 내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수치심과 위축감이 찾아왔다. 그럴때면 혼자 열심히 공부하고 익혀 마치 혜성처럼 짠 하고 다시 나타나거나 아니면 아예 그 분야쪽은 회피하기도 했었다. 마음관찰을 하고 영적 수련을 하면서 이 부분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구나 모를 수 있고, 또 누군가 에게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안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위험하고 터무니 없는 것인가? 우리 인류가 밝힌 지식은 과연 얼마나 대단하고 또 얼마나 많기에 안다는 허영심에 빠져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증명되고 설명될 수 없는 모든 현상들을 신비미신으로 치부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희랍에서 가장 똑똑하고 지혜로운 현인은 소크라테스임이 틀림없다. 그는 신탁에 의해 적어도 그렇게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늘 했던 말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였다. 일명 무지의 지라고 한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용기있는 자기 선언이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지식습득의 시대에서 지식검색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자기가 원하는 지식을 가장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는 능력만 갖추면 되지,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를 다 외울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해서 허세를 부리거나 더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모르면 모른다 시인하고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고 배우면 된다. 물론 모른다 했을 때, 어떻게 이것을 모를 수 있냐고 핀잔을 주거나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속 좁음이지 그 사람의 태도로 인하여 내가 위축될 필요는 사실 없다. 그 사람 또한 자기가 안다는 생각, 또 상대가 모르는 것을 안다는 것에서 오는 우월감과 자만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고려해야 할 상황이 아니다. 내가 할 일은 모르는 것을 시인하고 여쭤보고 배우는데 까지다. 그 사람이 잘 가르쳐 주든, 또는 무시하고 핀잔을 하든 그것은 그 사람 일이다. 내가 신경 쓸 수도 없고, 신경 써도 안 된다.

 

물론 각자 소중한 시간들이니 무턱대고 묻고 배우기 위해서 상대의 시간을 다 빼앗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스스로 공부하고 지식을 검색하는 자세는 필요하리라 본다. 여하튼 누구나 모를 수 있고, 또 물었을 때 거부당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인정을 하면 좀 더 배움과 이로 인한 성장이 빨라지리라 생각한다. 또한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사람이 물어왔을 때 무시하거나 지적허영을 부리기 보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자기가 가진 것들을 함께 나누다 보면 더 풍요로워지는 삶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자기가 가진 것을 순수하게 나누고자 하는 마음들이 많아질 때 이 사회도 그렇게 풍성해지리라 본다.

안광호

[주제어]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 크리슈나무르티,

khajoh@naver.com

[칼럼니스트 소개]

안광호 박사는 포항공대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5년 동안 통신용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5제품을 양산하여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세계최초로 CDMA1 Chip Transceiver 를 개발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지식경제부산하 국가연구소인 '전자부품연구원'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기획하고, 선도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잘산다는 것이 뭘까? 에 대한 순수한 탐구욕을 가지고 있으며과학의 바탕위에 인간의 심리와 의식세계를  통합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글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알아차림, 매일경제신문사], [소프트마인드, 비전과리더십], [마음세수, 예문당], [삼성붕괴시나리오, 다산북스], [열다섯 살 꿈의 시크릿, 미래지식], [긍정, 원앤원북스],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도전, 에이원북스], [6 시그마로 부자아빠 되기, 네모북스], [행복한 사과나무 이야기, 아름다운사회] 가 있으며, [꿈과 성공이 있는 명품인생] 이라는 오디오북을 발간하였습니다. 2007년 헤럴드 경제가 주최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사람’ 20인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컨설팅, 코칭, 집필 및 칼럼에 대한 문의 및 의뢰는 khajoh@naver.com, 홈페이지: www.akh.co.kr, 블로그: www.doctorahn.co.kr,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hoahn1, 트위터:www.twitter.com/kwanghoahn

 

[과학과의 통합을 위한 그의 독창적 행보]

l  6 Sigma Black Belt 획득

l  STRONG(직업흥미프로그램) 전문가 획득

l  한국심리학회 MBTI 전문가 획득

l  에니어그램 수련

l  Habiram Sprituality Training Course (영성심화수련)

l  위빠사나 명상 수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설정

트랙백

댓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