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를 만난다는 것_안광호_의식경영연구회

실천경영칼럼 2014.08.22 02:00

 

<욕구를 만난다는 >

' 별로 하고 싶은 없어요.'

예전에 전국의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신기했던 것이 서울에서 가까울수록 아이들이 애늙은이 처럼 힘이 없고, 삶에 대한 의욕, 나아가 미래에 자기가 하고 싶은 꿈이 없었다. 자기 꿈이 아닌 엄마나 선생님이 주입한 꿈이거나, 그냥 성적만 올려 놓으면 뭔가 되겠지 하는 수준이었다.

 

요즘 들어 나는 이와 똑같이 꿈이 없는 어른들을 자주 만난다. 명문대를 나오고 남들이 선망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정작 직장에서 하고 싶은지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나는 하고픈지에 대한 '그림 '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회사의 팀원들에게도 그림 만은 요구한다. 리더의 역할은 팀원들의 그림 장을 헤아리고 살펴 모두가 하나로 뭉칠 있는 그림 장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 장을 그리는 친구들이 있다. 내가 담은 조직은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바람을 담은 그림을 이야기 없다면, 나로서는 적잖게 당황스러울 밖에 없다. 팀원으로서 함께 하고 싶은 그림이 없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팀에 애정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팀을 떠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물어 주지 못한 것인가? 나는 그이를 무시하고 팀을 이끌어야 하는가? 그도 아니면 언제까지 그를 기다려야 하는가? 많은 생각이 올라올 밖에 없다.

 

이렇게 지내면 가슴이 뛰겠다는 그림을 그릴 있을 , 자신의 욕구와 삶의 가치를 발견할 있다. 욕구, 뭔가 하고 싶다는 것은 집착만 하지 않는다면 아주 좋은 것이다. 그것은 생명력,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원동력이다. 욕구가 없음은 생명력이 없음, 그것은 살지만 죽어 있음이다. 소위 말해서 남들이 선망하는 좋은 학교와 직장을 다니면서 이렇게 삶에 흥미를 느끼는 친구들이 많아지는가?

 

나는 원인을 우리의 교육에서 찾는다. 우리의 교육은 물어주지 않는다. 정답을 강요하기 바쁘다. 물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강요한다는 거다. 그렇게 아이들은 길들여진다. 성적을 올리면, 여하튼 성적만 올리면 이후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 가르친다. 돈을 많이 벌고, 그것도 오래 있는 직업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 주입한다. 여기에 피상적인 자기관찰이나 흥미 정도를 버무려 학교와 직업을 선택한다. 이런 부모나 선생들은 무책임하다. 자기가 보지 않은 길을 마치 진실인양 주입시키기 때문이다. 자녀와 제자들의 가슴 뜀은 고려하지 않고 그냥 성적만 일단 올리면 행복할 것이라 이야기 한다. 아이들은 자기와 대화하고 자기의 순수한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이들은 아예 그것을 묻는 법을 잊어버렸다.

 

막상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 가슴은 뛰지 않는다. 이들은 당황한다. 뭔가 멋진 것이 있을 알았는데, 막상 보니 아무 것도 없다. 약간 화도 나고 사기 당한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돈도 많이 주고 좋은 직장이니 그냥 다니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러다 번씩 이게 도대체 뭔가? 인생은 이런가? 의문이 올라온다. 자기와 만날 있는 값진 시간이다. 하지만 대면하기가 두렵다. 모든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질문을 애써 무시한다. 그리고 다른 대안들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일이 삶이다. 용기 있게 자기를 다시 만날 것인가? 아니면 열정 없는, 살지만 살아 있는 같지 않은 삶을 것인가?

 

욕구를 찾아라. 그것은 나의 생명력, 나의 길을 찾는 것이다. 신이 부여한 인간의 가장 특권은 '자유의지' . 스스로 자신의 , 만의 길을 찾는 것이다. 내가 길을 만날 , 우리는 가슴이 뛴다. 그렇게 다움을 회복하고 색깔과 향기를 찾는다. 생기지 않아도 이런 사람들은 다른 이를 들뜨게 하는 매력이 있다.

 

'Find My Way!'

안광호

주제어:감정, 에고, 생각, 명상

khajoh@naver.com

[칼럼니스트 소개]

안광호 박사는 포항공대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5년 동안 통신용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그 중 5제품을 양산하여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세계최초로 CDMA1 Chip Transceiver 를 개발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연구소인 '전자부품연구원'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기획하고, 선도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잘산다는 것이 뭘까? 에 대한 순수한 탐구욕을 가지고 있으며과학의 바탕위에 심리의 지평을 열고, 영성으로 하나가 되는 의식의 통합에 깊은 관심이 있어 이에 대한 연구와 수련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알아차림, 매일경제신문사], [소프트마인드, 비전과리더십], [마음세수, 예문당], [삼성붕괴시나리오, 다산북스], [열다섯 살 꿈의 시크릿, 미래지식], [긍정, 원앤원북스],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도전, 에이원북스], [6 시그마로 부자아빠 되기, 네모북스] 10여권이 있습니다.

문의 및 의뢰는 khajoh@naver.com, 홈페이지: www.akh.co.kr, 블로그: blog.naver.com/khajoh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hoahn1, 트위터:www.twitter.com/kwanghoahn

 

[과학과의 통합을 위한 그의 독창적 행보]

l  6 Sigma Black Belt 획득

l  STRONG(직업흥미프로그램) 전문가 획득

l  한국심리학회 MBTI 전문가 획득

l  초기 원형 에니어그램 수련

l  위빠사나 명상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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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기쁨_피에르신부_안광호_마음산책_의식경영연구회

독서리뷰 2014.08.08 01:30

 

 

[단순한 기쁨, 피에르신부]

 

 

'피에르신부'

프랑스 인들 사이에서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라고 일컬어진다. 1912년 프랑스 상류층에서 태어났으나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카푸친 수도원에 들어간 사람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으며, 전쟁 후에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권력, 정치적 야심이 많은 인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참전의 이유 또한 '타인과 공감하는 자' 로서 배타적이고 편협한 인종주의로 서로 싸우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회의원이 된 것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한계를 직시하고 직접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만든 '엠마우스' 라는 빈민구호 공동체는 집 없는 사람, 부랑자, 그리고 전쟁고아들의 안식처를 마련하는 것이었는데, 현재 44개국 350여 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2007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프랑스 북부 에스테빌에 잠들어 있다.

 

이상이 책에 나온 저자에 대한 설명이다. 내가 이 책을 고른 것은 법정 스님의 추천사 때문이다. 그가 프랑스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삶 속에서 영성을 실천하는 행동 때문일 것이다. 영적의식의 고양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존재의 영적의식의 고양은 비록 그가 은둔해 있다 할 지라도 인류 전체의 큰 빛으로 영향을 미친다. 많은 침묵의 영성가들이 있었고, 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인류의 의식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피에르 신부 처럼, 그들의 현장에서 직접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실천적 영성가들을 더 따른다. 테레사 수녀가 사랑을 받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피에르 신부는 삶 속에서 그가 믿는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려 했다. 그는 때로는 살생을 전제로 하는 전쟁의 참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충분히 오해받을 수 있을 정치활동도 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이 더 빛이 나는 이유는 그는 이 모든 것을 오롯이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 만으로 행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사심이 있었다면 그는 오히려 참전이나 정치활동으로 인해 타락을 했을 것이다. 온전한 사랑이라면 비록 살생이라도 용서 받고 이해받으며, 어떠한 업보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온전한 사랑의 마음이 되기 힘들거나 또는 자기의 사심을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라고 이름 부치며 행해진 사심 가득한 행동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렇지만 말이다. 이상과는 달리 실재에서 종교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대부분의 전쟁은 다 따지고 보면 개인이나 집단의 사심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서로 무고한 아이들을 죽이고, 보복을 하는 모습들을 보라.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의 아들, 딸 이라 자처하면서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기승전결이라는 어떤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연대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역사적 사실 보다는 각 시기별로 피에르 신부가 삶 속에서 행했던 사랑의 행위에 대해서 함께 공감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듯 하다. 하여 그의 자서전에서 가슴에 공명을 일으키는 문구 위주로 내 생각을 풀어가며 이 책의 리뷰를 적을까 한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사르트르는 썼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

 

사르트르는 자기(에고)라는 것을 하나의 허상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한 인간의 감정은 타인들의 행위에 지배를 받는 것으로 보았다. 어떤 행동을 했는데 타인들이 인정을 하고 칭찬을 하면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의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듯이 한 존재의 행복은 타인들이 가지고 있는데, 이런 연유로 타인은 지옥이라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사르트르 자신은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시선에 무심하려고 무던 애를 썼다. 하지만 무관심하려고 애를 쓰는 것 조차 하나의 관심임을 깨닫고 스스로 찾고자 했던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답을 결국은 찾지 못했다.

 

사르트르는 일단 존재 자체를 생각과 관념의 에고로 보았는데, 이것이 그가 범한 첫번째 오류다. 우리의 존재는 생각과 관념의 에고 너머에 있다. 그러하므로 진정한 나의 존재는 단지 있을 뿐, 생각이나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또한 애당초 나와 남의 구별조차 없다. 이것이 영적통찰을 통한 존재의 재발견이고 진실이다. 이런 진실을 사르트르는 거부했다. 스스로 분리와 개체화를 인정하고 말았다. 진실과 다른 가정을 진실이라 상정하고 그 안에서 해답을 찾으러 했기에 그의 사상은 치열했을지는 모르나 한편 공허한 메아리였을 것이다. 영적통찰이 빠진 실존은 그래서 허무하다.

 

남이 나와 단절될 때, 각자는 생각과 관념의 틀로 만난다. 자기 안의 생각들도 시간이나 사건에 따라서 바뀔 수 있기에, 그 유한성으로 인해 인간들은 스스로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또한 틀과 틀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긴다. 나의 틀을 나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나의 틀이 진실이라고 믿으려는 성질이 있다. 서로가 자기가 믿는 신념이 진실이라고 우길 때, 타인과의 만남은 고통이 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더 나아가 타인과 나를 분리시키고 단절시킨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신과의 분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신을 대상화함으로써 신을 배신했으며, 그로 인해 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죄의식에 떨고 있다. 나와 남이 틀을 넘어 사랑으로 만날 때 이 모든 것은 초월된다.

 

"엠마우스 공동체의 세 가지 규칙, 1) 우리가 먹을 것은 우리가 노동해서 번다. 2) 우리는 모든 것을 나눠 가진다. 3) 베푸는 사람이 되는 사치를 누리기 위해 사는데 충분한 정도 이상의 노동을 한다."

 

먹을 것을 노동을 통해서 번다. 한 때는 이런 것을 전근대적인 경제활동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코트 니어링/헬렌 니어링' '조화로운 삶' 이라는 책을 보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스스로 자급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불안하다. 과연 생산성과 경제성만이 행복하고 풍족한 삶의 전부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 지구는 그 안에 속한 인류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작물들이 있다. 하지만 과잉생산과 낭비, 독점, 사치와 같은 인간의 욕심들이 이러한 조화로움을 망쳐놓았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후손들이 사용해야 할 것 까지도 다 뽑아쓰고 있다. 절약과 함께 나눠씀이라는 생태학적 관점은 고려되지 않고, 내가 힘이 있으니 마음껏 쓰고, 마음대로 버린다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북미대륙에서 유럽인들이 단지 가죽을 얻기 위해 그 수많은 버팔로들을 도륙해서 대륙 전체가 고기 썩는 냄새로 진동하던 광경을 인디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방식의 서구문명화가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내가 노동을 통해 나의 먹거리를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은 일면 원시적인 듯 하지만 여러 잇점이 있다. 일단 스스로 먹여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통해 삶이 안정된다. 또한 공기, 햇살, 바람, 대지의 은혜로움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철학을 몸으로 깨닫는다. 절기에 따라 농사를 지음으로써 순응과 받아들임을 배울 수 있고, 인간의 자만심을 내려놓고 더 큰 섭리가 있음을 이해한다. 자고로 옛부터 농사를 오래 지어온 농부들은 생활 철학자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함께 지구가 우리에게 베푸는 은혜로움을 골고루 만끽할 수 있다. 햇살이 사람을 가리지 않고 비추듯이 말이다. 이런 삶은 부의 과도한 집중과 그로 인한 폐해도 막을 수 있다. '러스킨'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라는 책에서, 만일 마을에 부자가 있어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스스로 노동을 해서 자급할 수 있다면 스스로 나서서 부자의 집에 들어가 노동을 할 이유도 없고, 결국 부자도 하인들을 부릴 수 없어 직접 농사를 지을 수 밖에 없어, 부의 독과점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과거로 돌아가 농사를 짓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분명히 직접 먹을 거리를 재배해 봄으로써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황폐함에 대한 정신적 치유를 얻을 수 있기에,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면서 자연과 먹거리, 그리고 생태와 조화에 대해서 깨닫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좋을 것이라 본다. 인도의 간디가 왜 자급자족을 강조하며 스스로 물레를 돌렸는가? 그 행위를 통한 정신적 자립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엠마우스 공동체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은 듯 하다. 무엇보다 사회의 부적응자, 부랑자라고 하는 이들이 스스로 생산한 것으로 남을 도움으로써, 각자의 존재가치를 한껏 드높여 삶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볼 수 있다는 측면은 고무적이다. 인간은 다른 존재를 도움으로써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 기쁨을 느낀다. 그 기쁨은 하나의 샘물이며, 나를 더 생명력 있게 가꾼다. 사랑은 스스로의 사랑을 통해 더욱 더 커진다. 신이 우리에게 자신을 배반할 수 있음을 알고도 자유의지를 준 것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 사랑을 더욱 더 키우기 위해서다. 공동체의 부랑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살아갈 방편 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 일 것이다.

 

"곤경에 처했다는 의식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시련과 고난이라 불리는 장벽을 만날 때, 우리는 겸손해진다. 이제 뭔가를 들을 준비가 된 것이다. 젊을 때의 손쉬운 성공은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라 했다. 오만하고 방자하며 자신의 성공에 대한 신념으로 남의 이야기, 더 나아가 신적 소명을 외면한다. 이게 평생 그 사람의 틀이 되는 순간, 이 사람에게 성공은 하나의 큰 걸림돌일 뿐이다. 하고자 하는 바가 모든 것에 막혀 버릴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내 삶을 뒤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내 뜻대로 다 되는 세상은 원래 없음을 알게 되고, 그렇다면 내 뜻이 아닌, 더 큰 뜻은 뭘까에 귀 기울이게 된다.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구원은 시작된다. 결국 나를 내려놓고 온전한 합일, 사랑 가득 하나임을 경험할 기본이 이제야 갖춰진 것이다.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죽어야만 한다고 제자들에게 직접 설명을 했음에도, 베드로가 그럴 리가 없다고 하자. 예수가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뜻을 하나님 뜻이라 우긴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뜻이 서로 배치되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난다. 우리는 너무 자주, 또한 너무 쉽게 '하나님'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무엇보다 자기의 욕심이나 사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결국 하나의 신의 이름으로 입에 담지도 못할 전쟁들이 일어나고는 한다.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한다.

 

"삶은 누군가에게는 부조리고, 누군가에게는 신비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다. 이는 나를 영적인 세계로 이끈 스승님이 즐겨 쓰신 말씀이었다. 우리는 기적을 바란다. 예수께도 기적을 기대했다. 하지만 예수의 말씀 자체가 나는 기적이라고 본다. 물 위를 걸었다느니, 육적 부활을 했다느니, 죽은 이를 살렸다느니 그런 것들에 열광하고 집착한다. 왜 그런 것들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그 보다 수억 배나 더한 가치가 있는 말씀들에 왜 감동받지 못하는가? 삶에 마술을 기대하는 의식, 그 의식은 아직 샤머니즘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 삶 또한 그렇다. 삶에 기적을 바라는가? 삶에 마술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잘 살펴보면 삶 자체가 기적이고 신비다. 단지 내 눈이 멀고, 내 귀가 들리지 않아 못 알아차릴 뿐이다.

 

"우리는 왜 이 땅에 태어나는 걸까? 그것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함일 것이다."

참 아름다운 문구다. 왜 사는가? 돈 벌려고? 돈 벌어서 뭐하게? 우리의 삶이라는 것, 매일 매일 관계의 연속. 사람을 만나고 일을 만나고, 그 안에서 많은 감정들을 경험하고, 또 그렇게 성장하고 또 때로는 퇴행하며.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해 간다. 관계의 연속인 삶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저 아무 생각없이 바쁘기만 하다면, 그것은 다람쥐 쳇바퀴와 뭐가 다를 것이 있을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왜 주었나? 그 자유의지로 인간은 신을 배척하고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준 것은, 능동적으로 사랑하라는 뜻이 아닐까? 자유가 없이 어떻게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자유의지로 인한 온갖 폐해에도 불구하고 사랑 한 몸짓의 에너지가 그 모든 것을 다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사랑은 또한 사랑함으로써 더 커지는 속성이 있다. 사랑 그 자체인 신이 바라는 것도 결국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줌으로써 사랑을 더 풍성히 가꾸기 위함이 아닐까? 대신 우리의 마음 깊숙이 신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달리 말하면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 기쁨이 샘솟도록 어떤 씨앗 하나(신성의 빛)를 주신 듯 하다. 그것을 잘 알아차리고 그 섭리대로 향할 때, 우리는 기쁨이 넘친다. 신바람이 난다. 물론 에고의 강한 장막으로 그 빛을 가리며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를 자기 멋대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런 삶에서는 결코 참다운 기쁨을 발견할 수 없다.

 

"나는 있는 자, 그로다"

'I AM' 나는 아브라함 이전 부터 있는 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 어느 때도 아닌, 지금! 그 어느 곳도 아닌 여기에 있는 자, 태어난 적도 없고 따라서 죽을 수도 없는 그런 나! 그 나를 깨달은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 있는 자! 말미암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깨치지 못하리. 그 나는 빛이요, 생명이요, 부활이다. 예수가 아브라함 이전 부터 있다고 했을 때, 바리새인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의 말을 개미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 처럼. 하여, 성경의 말씀, 그 안에 들어 있는 여러 메타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을 드 높여야 할 터. 그런 과정 없이 성경 말씀을 곧이 곧대로만 듣는 다면, 때로 그것은 너무 맹목적이고, 때로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나는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

있다고 믿는 것은, 억지, 맹목일 수 있다. 이해로 깨치면 저절로 샘솟는 믿음이 생긴다. 이해로 깨친 이는 믿음을 초월한다. 이해로 만날 때, 믿음은 사실과 진실이 된다. 그런 경지로 가야하지 않을까?

 

"마태복음(5, 복이 있는 사람)"

이 중 피에르 신부는 '마음이 가난한 자' '의로움 때문에 박해 받는 자' 의 경우는 바로 복을 받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미래에 복을 받는다고 나와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럼 먼저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 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는 마음이 비어있다는 뜻이다. 마음이 빈다는 것은 나를 내려놓는다는 것이며, 전적으로 신의 섭리에 자기를 맡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럴 때 영적으로 충만해진다. 이는 즉시에 바로 이뤄진다. 사실 우리는 빛의 속성, 신적 속성, 사랑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검은 천으로 그것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그 검은 천을 걷어 버리면 원래 있어온 참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의로움' 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의 질서를 따른다는 것이다. 나를 내려놓고 온전히 내맡기며 그 알아차린 바 대로 산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선택한다면 바로 이 의로움을 알아차리고 선택해야 하며, 그 알아차린 바대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는 '아버지의 일' 을 하러 왔다고 표현을 했다. 하늘의 천명을 알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두렵거나 의기소침하지 않다. 그는 자기를 버림으로써 하늘과 하나가 되었다. 속된 말로 하나님 백을 등에 엎고 행동하는 것이니 거침이 없다. 그는 세속적인 죽음마저 초월한다. 그야 말로 진정한 도의 사람이다.

 

"동물들도 사랑을 한다. 하지만 자유없이 사랑을 한다."

인간의 사랑은 자유를 기반으로 한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이 지구별에 왔다. 사랑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와 자발성이 있어야 사랑을 할 수 있다. 신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 사랑을 거부할 선택을 할 수 있음에도 그 특권을 준 것은 바로 사랑의 힘을 믿기 때문이었다. 한 사랑의 힘은 수 백의 범죄(사랑 없음으로 인한 행위)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에너지가 있다. 사랑은 서로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에너지가 확장된다. 사랑 그 자체인 신은 우리가 자유의지로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 받기를 원하신다. 그럴 때 영적충만, 기쁨이 샘솟는다. 그것이 사랑의 속성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누구나 그런 신성을 가지고 있다. 동물의 자유없는 사랑은 본능일 뿐이다. 그 안에는 인간의 사랑이 가지는 거룩함을 찾을 수가 없다. 인간의 자유는 하지만 아무렇게나 사용하거나 내 변덕에 따라 사용하면 할수록 자유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특성을 지녔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끔찍한 죄책감으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게 주눅 들었던가?"

매질하는 모습으로서의 아버지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생각으로 남들이 이미지화 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을 만나는 것일까? 그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가? 생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면, 모든 이들의 하나님이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일 뿐, 하나님 그 자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 생각을 진실이라 믿으며, 같은 종교인들끼리도 언쟁을 높인다. 하나의 코미디다.

 

도스도에프스키의 '카마라조프가의 형제들' 에서 2,000 년만에 다시 부활한 예수에게 대사제는 이야기한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지만 인간들은 그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할 지 모르고 있다. 그들은 자유의지로 인해 불안하다. 그래서 대사제는 그들에게 두려움과 죄책감을 심어주고 그것을 없애주는 역할을 대신 맡음으로써 종교를 부흥시켰노라 자랑한다. 자기들 성직자들은 비록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불안과 죄책감에 뜨는 인간들에게 자기들을 통하면 그러한 죄를 사할 수 있다는 면죄부를 줌으로써 평화를 주었노라고 자랑한다.

 

분명 이 책의 저자인 피에르 신부도 교권화된 종교가 부흥을 위해, 과도하게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주었노라고 개탄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상화 하고 있다. 인간의 개체의식 속에는 신과의 분리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스스로 대체화 함으로써 지혜를 얻었을 지는 모르나, 그로 인해서 신과의 분리,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죄책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나를 온전히 내려놓고 완전한 합일을 이룰 때만 이러한 죄책감과 두려움은 없어진다. 그런데 기존의 교회들이 이런 인간 근원의 두려움을 오히려 부추겨 사적인 세력확장에 이용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피에르 신부를 이를 직시한 것이다.

 

"네 복음서와 신약의 모든 글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씌어진 것도, 성령에 의해 석판에 씌어진 것도 아니다."

이 부분은 첨예하고 민감한 이슈다. 하지만 위의 글은 사실이다. 성경을 쓴 이가 예수의 의식이 아닌 이상, 그리고 온전히 자기를 내려놓지 않은 이상, 사사로운 사심이 들어갔을 수가 있다. 이것을 인정하느냐 아니냐?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성경의 권위가 훼손된다는 측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를 절대적 지주로 삼는 종교에는 하나의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예수 사후에 그것도 예수의 사도들의 제자들 그룹에서 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가 살아계셨을 때, 12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의식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하물며 그 후대의 제자들의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그러니 오직 이것만이 절대적 진리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는 잘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상으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마친다. 나에게 공명을 일으킨 부분들에 대해서만 기술해 보았으니, 책의 내용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 번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안광호 (khajoh@naver.com)

[주제어]: 단순한 기쁨, 피에르신부, 마음산책

 [리뷰어 소개]

안광호 박사는 포항공대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5년 동안 통신용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5제품을 양산하여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세계최초로 CDMA1 Chip Transceiver 를 개발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지식경제부산하 국가연구소인 '전자부품연구원'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기획하고, 선도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잘산다는 것이 뭘까? 에 대한 순수한 탐구욕을 가지고 있으며과학의 바탕위에 인간의 심리와 의식세계를  통합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글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알아차림, 매일경제신문사], [소프트마인드, 비전과리더십], [마음세수, 예문당], [삼성붕괴시나리오, 다산북스], [열다섯 살 꿈의 시크릿, 미래지식], [긍정, 원앤원북스] 10여권이 있다.

 

산과 자연을 사랑하는 '자유여행가' 이기도 한 그는, 최근 '딸과의 백패킹 이야기' 를 고정적으로 잡지에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집필 및 칼럼에 대한 문의 및 의뢰는 khajoh@naver.com, 홈페이지: www.akh.co.kr, 블로그: www.doctorahn.co.kr,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hoahn1, 트위터:www.twitter.com/kwanghoahn

 

[과학과의 통합을 위한 그의 독창적 행보]

l  6 Sigma Black Belt 획득

l  STRONG(직업흥미프로그램) 전문가 획득

l  한국심리학회 MBTI 전문가 획득

l  에니어그램 수련

l  Habiram Sprituality Training Course (영성심화수련)

l  위빠사나 명상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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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와 함께 떠나는 백패킹_월간 사람과산_8월호_연재칼럼_석룡산_조무락골_안광호

요즘 딸 아이와 백피킹을 떠나고 있고, 관련해서 글들을 월간 '사람과산' 에 올리고 있습니다. 전문은 아래를 클릭해 보세요^^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107&attrId=&contents_id=62838&leafId=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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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와 함께 떠나는 백패킹_월간산 7월호 연재칼럼_안광호_운악산

요즘 딸 아이와 백패킹을 떠나고 있습니다.

아래를 클릭하시면, 전문을 보실 수 있어요^^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107&attrId=&contents_id=59671&leafId=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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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로 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_안광호_의식경영연구회

실천경영칼럼 2014.08.01 23:30

 

 

<식물로 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부터 나는 회사에서 식물들을 키운다. 좁디 좁은 책상 위에 카모마일, 카랑고에, 아이비 등을 키우는 재미가 솔솔하다. 예전부터 식물을 키우고 싶던 차에, 스님이 추천하셔서 비로소 실행에 옮기게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녹색들을 많이 보고 싶고, 일하는 짬짬이 이들을 바라보는 여유도 가지고 싶어 키우게 되었지만, 이들과 함께 하면서 생명을 키워내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이들도 생명이 있는지라 월요일 아침이 되면 내가 없는 주말 사이 어떻게 되었을까 안부가 궁금해서 빨리 회사에 출근하고 싶어진다. 사실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이들의 상태부터 살피는 것이 나의 일과다. 그런가 하면 퇴근 때는 이들을 창가에 옮겨 놓는다. 많은 햇빛을 선물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이들의 줄기를 자르면 항상 주변으로 줄기 쌍의 새싹이 돋았다. 시련을 대하며 준비하는 이들의 자세가 놀랍다. 한낱 식물들도 시련과 역경이 닥치면 그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들을 보면서 열심히 삶에 붙어야 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인간이 동물보다 못하다고 말하지만, 식물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올라온다. 시련과 역경을 식물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가 있는 최선으로 살아내는데, 우리들은 어떠했던가? , 환경 하며 뒤로 비겁하게 숨기 바빴지, 얼마나 앞에서 당당했던가? 벽이 나를 가로막으면 벽을 타고 넘어가기 보다, 쉽게 좌절하고 포기한 적은 없었던가? 자신 비겁해서 그랬노라 인정하기가 싫어서, 누가 벽을 가져다 놓았나, 나만 이런 벽이 가로 막는가 하며 탓만 하지는 않았던가? 그렇게 지내봐야 바뀌는 것은 하나 없다. 아니, 오히려 나만 퇴행 뿐이다. 세상이 나를 버린 같지만 사실 스스로 고립의 장벽 속에 갇혀 있지 않았던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으로 살아내려는 식물들의 노력이 놀랍고 존경 스럽다. 배우려고 작정하면 가에 먼지 하나 스승 아닌 것이 없다. 아이비를 잘라 수경재배를 하는데, 줄기를 올리기 전에 항상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린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우리는 높게 자라는 것만 바랐지, 그러기 위한 뿌리내림에는 얼마나 소홀했던가?

 

나라의 정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정치 탓을 하고 정치인들을 비난하는데, 결국 우리 수준이 정도 밖에 되니 그런 정치인들을 뽑는 아니겠는가? 지리산이 높은 것은 만큼 바탕이 넓기 때문이다. 민중과 국민들의 의식이 넓고 깊으면 그들이 뽑은 위정자들의 됨됨이도 우리가 따로 바라지 않아도 높을 밖에 없지 않을까? 아이비라는 식물이 줄기를 높이 올리기 전에 뿌리를 넓고 깊게 박는 것을 보며, 안에서 삶의 오묘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식물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키우며 그들의 생육을 관찰하다 보니, 이들이 또한 나의 스승임을 알겠다. 예전 같으면 함부로 대했을 텐데, 안도현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는 말처럼, 식물줄기 함부로 꺽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언제 이들처럼 정직하게 삶을 일궈본 적이 있는가 되묻고 싶다. 최대한 이들에게 자연의 느낌을 선물하고 싶어 소박한 토분을 골라서 심었다. 막힌 공간에 가두어서 이들을 내가 욕심부려 독점하는 같아 살짝 미안하지만 주변에 없이 교감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고맙고 감사한 아침이다.

 

안광호

주제어:안광호, 의식경영연구회

khajoh@naver.com

[칼럼니스트 소개]

안광호 박사는 포항공대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5년 동안 통신용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그 중 5제품을 양산하여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세계최초로 CDMA1 Chip Transceiver 를 개발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연구소인 '전자부품연구원'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기획하고, 선도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잘산다는 것이 뭘까? 에 대한 순수한 탐구욕을 가지고 있으며과학의 바탕위에 심리의 지평을 열고, 영성으로 하나가 되는 의식의 통합에 깊은 관심이 있어 이에 대한 연구와 수련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알아차림, 매일경제신문사], [소프트마인드, 비전과리더십], [마음세수, 예문당], [삼성붕괴시나리오, 다산북스], [열다섯 살 꿈의 시크릿, 미래지식], [긍정, 원앤원북스],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도전, 에이원북스], [6 시그마로 부자아빠 되기, 네모북스] 10여권이 있습니다.

문의 및 의뢰는 khajoh@naver.com, 홈페이지: www.akh.co.kr, 블로그: blog.naver.com/khajoh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hoahn1, 트위터:www.twitter.com/kwanghoahn

 

[과학과의 통합을 위한 그의 독창적 행보]

l  6 Sigma Black Belt 획득

l  STRONG(직업흥미프로그램) 전문가 획득

l  한국심리학회 MBTI 전문가 획득

l  초기 원형 에니어그램 수련

l  위빠사나 명상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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