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게 뭘까?_안광호_의식경영연구회

실천경영칼럼 2014.09.11 18:41

 

< 산다는 뭘까?>

" 산다는 뭘까?"

누구나 관심을 가지지만, 정답은 없고 그래서 일반화 없는 주제다. 하지만 삶이라는 무대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떤 감정들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삶이 대체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뭔가 꼬여가고 있는지를 판단할 뿐이다. 물론 판단들도 지극히 주관적이며, 생각이 바뀜에 따라 환경의 변화와 상관없이 변할 수가 있다.

 

경험을 빗대어 이야기 보라면, 환경 보다는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태도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러 왔을까? 여러 이야기를 있겠지만, '사랑을 배우러 왔다' 라고 고백하는 프랑스의 '피에르 신부' 말을 나는 좋아한다. 이렇듯이 정답이 없는 하지만 아주 중요한 주제의 이야기를 오늘은 볼까 한다. 화두의 특성상 지극히 개인의 경험을 통한 한시적 결론임을 먼저 밝혀 둔다. 하여 이야기는 단지 개인의 생각에 대한 기록일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그러하기에 더욱더 논쟁거리가 되지는 못한다.

 

1) 시작과 끝을 아는가? 아니면 여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적이 있는가?

삶의 시작의식은 태어남이요, 끝의 의식은 죽음이다. 주제에 관해 특히 죽음에 관해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육체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고? 거짓말 하지 말기를. 단지 그대가 죽음을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거나, 주제를 담대하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피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종교나 영적 믿음으로 죽음을 초월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삶의 여러 사건들 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적어도 지구에서의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죽음을 초월한 이가 있다면 그는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에잇! 죽기 밖에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산다면 현재의 삶과는 아주 다른 그것을 살고 있을 것이다.

 

눈치 보며 살지도 않을 것이고, 거절 당할까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초월할 것이다. 자기의 소신대로, 자기의 색깔대로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제약과 두려움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삶이 실의에 빠져 바다에 투신 자살하려 했던 사람이 생각을 고쳐먹고 밑바닥에서 다시 재기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삶의 고비마다 예전 같으면 "내가 이런 것을 어떻게?" 라고 하며 망설였는데 다음부터는 "죽으려 했는데 정도를 못해!" 하면서 가뿐하게 고비를 넘을 있었다고 했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언제고 죽음은 우리에게 통보하지 않고 우리를 데려간다. 그래야 삶이 재미있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 데려가는지 안다고 생각하면 삶은 끔찍하거나 아주 재미없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늙고 병들어 생적 기능이 하면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오늘 아침 먹고 길거리 나가다가 변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지만 죽을 후회 없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겠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려면 삶을 아주 살아야 한다.

 

나아간다면,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통해, 철학과 영성을 만날 있다.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진정한 '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물음들을 가지고 사는 삶과 그냥 하루 다람쥐 바퀴 돌듯이 사는 그것과는 비록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삶의 질은 천양지차 다를 밖에 없지 않을까? 삶에서 물음을 가지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물음이 나를 크고 넓고 깊게 성장시킬 것이기에.

 

2) 진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일까? 몸이 나인가? 그렇다면 몸이 없어지면 내가 없어지는 것인가? 뇌가 나인가? 그렇다면 뇌가 죽으면 내가 진짜로 죽는 것인가?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름, 직업, 역할, 인종, 국민 등이 나인가? 아니면 생각이 나인가?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게 하고, 생각을 지켜보는 다른 나는 누구인가? 아니면 나는 단지 여러 개의 생각을 가진 자아의 조합일 뿐인가? 그렇다면 몸이 죽을 자아들도 소멸하고 마는 것인가? 그래서 나도 정말로 없어지는 것인가? 머리가 복잡한가? 살아가기도 바쁜데 이런 문제들로 골치 썩이기 싫은가? 그렇다면 한다고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가? 무딘 톱으로 나무가 베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나무꾼에게 나그네가 톱을 갈아보라고 하니, 나무 시간도 없는데 톱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타박하는 나무꾼이 혹시 당신은 아닌가?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려줄 없다. 우물까지 데려가는 것은 누군가가 물음으로 던져줄 있지만 우물물을 마시는 것은 당신이어야한다. 없이 있음의 세계, 상대성을 초월한 하나됨의 세계, 어느 곳도 아닌 여기, 어느 때도 아닌 지금의 경험을 보시길. 참나를 알고 사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또한 천양지차.

 

3) 진짜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신해철의 넥스트라는 그룹이 부른 노래 제목처럼, "니가 니가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뭐야? 뭐어야?" 들에 꽃들을 보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데, 하나 하나 살펴보면 마다의 색깔과 향기가 있다. 가장 다운 색깔과 향기는 무엇인가? 우리네 교육은 이런 것을 물어주지 않았다. 물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말살했다고 봐야 한다. 사회에 적응 하는 수재만 만들었는데, 이는 교육의 반독재와 횡포가 아닐까 싶다. 부모도 선생도 아이들도 성적을 올려야 하는지, 성적을 올리면 정말로 행복한지, 그리고 무엇이 진짜로 성공인지 고민도 보지 않고 양육되고 있다. 자기 색깔, 목소리, 향기 내면서 조화를 이뤄 사는 법을 알아야 하는데 공장에 풀빵 찍어내듯이 똑같이 찍어내니 이를 어찌할꼬. 남들 눈치보느라 자기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사는 삶이 억울하지 않은가? 자기 얼굴에 맞는 가면 쓰지 않고 억지로 가면 가져다가 쓰고 다니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물음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가? 찹찹한가? 나는가? 숨만 나오는가? 늦었다고 포기하는가? 체념하는가? 하루를 살아도 가슴이 뛰는 펄떡이는 생선처럼 살아보면 어떨런지. 너무 많이 벗어나 이제 어떻게 수도 없다고 변명하고 싶은가? 되돌리기에 너무 벗어나 버린, 너무 늦어버린 인생은 없다. 다시 태어난다면 그렇게 살아보겠다고 피하지 마라. 지금 즉시 행동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삶의 소소한 것에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지 물어보고 행하라. 그런 매력을 발산하라! 자기 색깔과 향기와 소리를 내면 그것은 살아도 죽어 있는 것이다. 뭔가 근사한 같은데 끄는 매력이 없다. 밋밋 덤덤. 아무도 당신을 그렇게 살도록 몰지 않았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이목, 우리의 교육, 물론 얼마간 영향은 미쳤다. 하지만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선택한 것은 당신이 아닌가? 당신 인생이다.

 

4)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가?

삶은 관계를 통한 사건의 연속이고,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만난다. 감정은 어떤 환경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에 대한 생각과 견해로 인해 생긴다. 그러니 감정을 헤아리다 보면 자기의 알게 되고, 그것들을 객관적으로 봄으로써 다룰 있게 된다. 생각과 감정의 노예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짜 나를 어렴풋하게나마 찾아간다. 살면서 생각과 감정에서 자유로울 있다는 것은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속고 있다. 감정의 원인을 외부로 돌린다. 환경 , 탓을 하는 것이다. 절대 속지 마라. 세상에는 화날 , 슬픈 , 기쁜 일이 따로 없다. 단지 있을 뿐이다. 일을 누구는 철저하게 슬픈 , 화날 , 우울한 일이라고 믿고 산다.

 

감정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에 휩싸이거나 그것을 왜곡시켜 버린다. 억압, 투사, 전이, 회피는 감정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태다. 억압을 살펴보자. 억압은 감정의 에너지를 억지로 누르는 것이다. 결국 나중에 가서 본인도 주체할 없을 정도로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그것은 감정의 다이너마이트다. 부정적 감정의 억압은 관계나 심지어 존재의 종말을 이끌기도 한다. 감정의 억압과 분노는 몸의 면역체계 또한 망가뜨린다. 과도하게 억압된 스트레스는 아주 위험하다.

 

회피는 감정의 문맹인 감맹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스스로 감정을 대면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감정에 대한 감각을 닫아버린다. 사람이 감정을 느낄 없다면 기계와 다를 바가 있을까? 감정을 느끼는 감각은 영성으로 가는 관문이다. 스스로 감맹의 길을 걷고 있다면, 삶이라는 무대를 통해서 의식의 성장을 이룰 수가 없다. 이런 이들은 관계가 피상적으로 겉돌고 만다. 자기의 이야기를 모르고,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다른 사람들이 감지한다. 감정을 느끼는 감각에 대한 차단은 억압만큼이나 그래서 위험하다. 감맹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능력을 배울 수가 없다.

 

투사와 전이는 우리가 감정을 다루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모든 부정적 감정의 원인을 탓으로 돌림으로써 일단 죄책감과 불편한 마음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대가로 의식의 성장은 이룰 수가 없다. 이들의 관계는 파국을 치닫게 마련이다. 이들은 부정적 감정을 투사함으로써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다. 하지만 진실은 뭔가? 모든 감정의 원인은 탓이다. 이는 어느 종교의 고상한 구호가 아니고, 영적 심리적 진실이다. 앞서 이야기 처럼, 어떤 감정은 어떤 일에 대한 해석에 의해서 생긴다. 부정적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내가 그런 패턴에 걸려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알아차리면 그것에 걸려 들지 않을 묘책을 깨닫는다. 그런데 원인을 내가 아니라고 하니, 순간을 모면하려다 계속 덫에 걸려들게 된다. 같은 수법으로 계속 당하고 있으니 어리석고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 어떻게 감정을 대면해야 하는가?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감정을 의식의 세계로 끌고 와야 한다. 감정이 있는 그대로 올라오게 놔두고 바라보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들숨과 날숨에 따라서 감정을 느끼며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생각이 다른 곳으로 그대를 이끌 테지만 다시 감정에만 집중한다. 감정에 무엇이라 이름 부치지 않고 그냥 바라보면 좋지만 그것이 된다면, 예를 들어 그것이 '분노' 라면, 들숨에 '분노', 날숨에 '분노' 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집중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30분만 집중하면 감정은 온전히 사라진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만나주면 그러한 감정을 일으켰다고 믿었던 상대를 만나도 그런 감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의 힘이 강해지면 상대 또한 의식적 무지와 가난에 의해 그렇게 행동했음을 이해하게 된다. 예수는 이를 두고, "하나님 저들은 자기들이 잘못하고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라고 말했다. 이렇게 감정을 만나다 보면 어떤 관계에서 나타나는 반복적인 부정적 감정의 패턴이 과거의 상처 때문인 것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상태로 돌아가 앞서 이야기한대로 감정을 만나고 놓아주면 된다. 이렇게 연습을 하면 감정을 다루는데 능수능란해진다. 그리고 올라오는 부정적 감정과 감정을 일으키는 역할을 상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갈등에 의한 부정적 감정이 내가 부족함을 그래서 성장할 길을 알려주는 축복의 선물로 이해하게 된다. "모든 감사!" 라는 구절이 비로소 몸으로 체화된다.

 

5) 즐기기 위해 다양하게 접촉하고 공부하라

끌림이 있는 것들을 망설임 없이 행하라! 아무도 그것을 막을 없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 의한 선택권이 있음을 명심하라. 신이 우리에게 전적인 자유의지를 주었는지 생각해보라. 앞서 이야기한 감정과 상처의 치유를 통해 사랑에서 올라오는 근원적 '끌림' 발견하게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접촉하는데 아낌없는 시간을 투자해라.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니 그때는 예전과 같지 않다"

, , 체의 밥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음악도 만나고 미술도 만나고 철학도 만나고, 영성도 만나는 것이다. 접촉점을 위한 공부와 사람과의 교류를 넓혀 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시도들이 우리의 삶을 아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삶은 종합예술이다. 머리중심의 '' 로만 사는 것도 아니고, 가슴 중심의 '' 으로만 사는 것도 아니며, 중심의 '' 로만 사는 것도 아니다. 편식없이 골고루 보면서 자신의 지력, 체력, 덕력을 키워가야 한다. 그것이 두루 원만한 , 둥글디 둥글어 넘어가는 복된 삶이다.

 

6) 나와 관계한 모든 것에 그리고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최선이란 무엇인가? 조정래 작가는 최선의 정의를 '스스로 감동할 만큼 혼과 몸을 바쳐 무엇을 하는 상태' 라고 했다. 스스로 감동과 전율을 느낄 만큼 관계에서 최선을 다하는가? 최선을 다하는 삶은 미련과 후회가 없다. 어떤 사건에 미련이 남는다는 것은 내가 그것에 온전히 붙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언제 어떻게 죽어도 점의 미련도 없을 것이다. 금강경에 "응무소주이생기심 (머무는 없이 마음을 내다)" 이라는 말이 있다.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 마라. 마음을 내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고통은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긴다.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래 가지려 하고, 싫다고 생각하는 것은 밀어내려고 하는 마음이 바로 고통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타나고 사라짐' 연속이다. 그것은 현상계의 변하지 않는 법칙이다. 그러니 나와 인연이 닿아 나타났을 최선을 다해 관계하고, 그것이 다하면 미련없이 놓아주어야 한다. 이미 현실은 떠나버렸는데 아니라고 잡고 있으면 새롭게 오는 인연을 반갑게 맞이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지나가 버린 과거를 후회하고, 오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며 정장 순간 만나는 모든 (일이나 사람)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 그렇게 살다보니 현재는 어느 후회뿐인 과거로 전락하고 만다. 오호, 통재라!

 

7) 전적으로 긍정하고 감사하라!

나에게 일어난 어떤 , 특히 우리의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은 그대로 받아들일 밖에 없다. 가슴 아프고 야속하게 들리지만 그래야 한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진실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진실에 대한 부정이다. 거짓의 기반 위에 살겠다고 발버둥치면 결국 내가 미쳐버린다. 정신이상으로 미친 사람들의 경우가 이렇다. 이미 일어나 버렸는데 아니라고, 아니라고 울부짖다 보니 도저히 견뎌서 그런 방향으로 버린 것이다. 어떤 일이 뜻대로 안되었다고 낙심하는가? 그렇다면 내가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먼저 물어보라! 부족함이 있다면 최선으로 다음에는 도전하면 된다. 그런데 최선을 다했는데도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은 하늘의 뜻이다. 전적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여라. 그것은 때로는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다른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일 있다. 그렇게 감사와 긍정으로 삶에 일어난 일들을 만나게 , 일은 일이 일어나기에 가장 합당한 때에 일어났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때로 순간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런 어떤 섭리가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절대긍정과 절대감사는 우리의 의식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다.

 

8) 나가 아닌 우리, 그리고 영적인 삶에 관심을 가져라.

우리 몸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는 결국 돌아가 하나가 된다. 세상의 종교들은 진실하나를 알리고자 했다. 성경, 불경, 도덕경, 그리고 우리의 고유사상인 천부경 또한 그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것을 말로 없는 세계다. 깨친 자는 말을 없고, 하는 순간 진리와 멀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경전들은 '메타포(비유)' 들어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존재에 대한 관심은 사실 저절로 생긴다. 우리가 살러 것도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는데 정신이 팔려서 우리는 존재를 잃어버렸다.

"Self Forgetting"

앞서 말한 물음 하나만 바로 잡아도 결국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이끌림을 받게 것이다. 어차피 돌아갈 고향이다. 연어처럼 우리의 마음씨앗 속에는 그곳을 그리워 하는 강력한 장치가 들어 있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든 사심의 장막으로 빛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앞의 이야기들 모두 사심의 장막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지구별에 왔을까?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을까? 인간은 자유의지로 신을 배반하기도 하지 않는가? 이는 인간존재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유가 없이 사랑을 배울 수가 있겠는가? 사랑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가능하다. 그러니 필요충분하게 자유가 있어야 한다. 점을 헤아려보면 결국 자유는 의식의 진보를 통해 궁극적 사랑과 하나가 되는데 사용되어질 가장 기쁘고 가치가 있는 것임을 있다. 정화되어 있다면 점을 명확하게 깨칠 것이다.

 

산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40 초입에 내가 생각하는 ' ' 이런 경험적 깨침으로 이뤄져 있다. 물론 답은 한시적이고, 가변적이다. 당연히 답은 그래야 한다. 아마도 10 뒤에 글을 본다면 부끄러워 지워버리고 싶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것만이 아니라, 그만큼 내가 성장했음에 스스로 기뻐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작은 경험들이지만 인연이 닿아 글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줄기 빛으로 다가온다면 정말 감사할 것만 같다. 사랑으로 온전히 하나되는 우리를 생각하며..

 

안광호

주제어:감정, 에고, 생각, 명상

khajoh@naver.com

[칼럼니스트 소개]

안광호 박사는 포항공대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5년 동안 통신용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그 중 5제품을 양산하여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세계최초로 CDMA1 Chip Transceiver 를 개발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연구소인 '전자부품연구원'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기획하고, 선도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잘산다는 것이 뭘까? 에 대한 순수한 탐구욕을 가지고 있으며과학의 바탕위에 심리의 지평을 열고, 영성으로 하나가 되는 의식의 통합에 깊은 관심이 있어 이에 대한 연구와 수련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알아차림, 매일경제신문사], [소프트마인드, 비전과리더십], [마음세수, 예문당], [삼성붕괴시나리오, 다산북스], [열다섯 살 꿈의 시크릿, 미래지식], [긍정, 원앤원북스],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도전, 에이원북스], [6 시그마로 부자아빠 되기, 네모북스] 10여권이 있습니다.

문의 및 의뢰는 khajoh@naver.com, 홈페이지: www.akh.co.kr, 블로그: blog.naver.com/khajoh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hoahn1, 트위터:www.twitter.com/kwanghoahn

 

[과학과의 통합을 위한 그의 독창적 행보]

l  6 Sigma Black Belt 획득

l  STRONG(직업흥미프로그램) 전문가 획득

l  한국심리학회 MBTI 전문가 획득

l  초기 원형 에니어그램 수련

l  위빠사나 명상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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