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쿵푸스_고미숙_안광호_자몽인_북드라망

실천경영칼럼 2012.10.24 12:16

 

호모쿵푸스

서점을 가보면 대중들의 갈증을 파악할 수 있다. 최근들어 대중들이 즐겨찾는 책들은 비움인문학으로의 회귀라는 두 단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아무리 채우고 또 채워도 삶에 대한 갈증이 풀리지 않기 때문에 그 동안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씩 들어내 보거나 무려 수천 년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성현의 고전들 속에서 답을 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대한민국은 압축성장의 국가다. 외부로 보이는 화려한 성장률의 이면에 개개인의 희생이 녹아 있다. 우리는 자기의 색깔과 향기대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빠른 속도를 위해서는 개성의 몰살을 통한 일사불란함이 최고의 가치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상처 또한 철저한 무시의 대상이었다. 노인들은 노인들 대로 설 자리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그들이 가진 지식은 초라하기 짝이 없고 아직 우리는 그들의 지혜에 귀 기울일 만큼 절박하지 못하다. 농경사회에서 태어나 일제식민지와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겪고, 산업사회와 더불어 419, 516, 민주화 항쟁과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전면에 있었던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만큼 잘 살게 되었건만 이제 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퇴물 취급만 당하고 있다.

 

현 사회를 떠 받들고 있는 30~50대들도 삶이 척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애당초 자기의 색깔 보다는 사회나 부모가 바라는 대로 직장에 들어갔기에 일에 열정이 생길리도 만무하지만 이 직장에서도 언제 퇴출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갔고, 부모나 사회가 시키는 대로 직장에 들어가면 뭔가 뾰족한 수가 있겠거니 기대했건만 그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무엇 보다 평균 수명 100세의 호모헌드레드 시대를 어떻게 대처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20년 정도 벌어서 남은 40~50년을 어떻게 버텨야 하는가? 도저히 풀리지 않는 삶의 고차 방정식이 이들에게 주어져 있다. 정규직들도 이럴진대 비정규직의 삶은 오죽하겠는가?

 

그럼 10대 들의 삶은 어떤가? 한마디로 이들에게는 교육이란 단어를 붙이기 조차 민망하다. 이들에게 교육=성적올리기에 다름 아니다. 사회가 오직 에 대한 가치만을 최우선 시 하다 보니, 부모나 선생들은 좋은 성적 얻어서 좋은 학교 가고 또 좋은 직장 나와서 큰 차와 평수 넓은 아파트를 마련하는 것이 성공이라는 등식을 알게 모르게 주입시킨다. 그나마 우리 때는 자기 스스로 탐구하고 습득하는 공부라도 했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복습이라고 해 봐야 들었던 학원 강의의 재탕이 전부다. 회사 생활을 해 보면 문제 해결능력과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이렇게 주입식 교육을 받아서는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가 없다. 모두 다 학원에 내몰리고 경쟁의 논리속에만 갇혀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귈 시간도 없다. 스마트 폰의 등장으로 관계의 양은 많아졌으나 그 숫자는 허울 뿐이다. 수 천명의 페이스북 친구를 가졌으나 내 진짜 마음을 알아줄 친구 한 사람도 없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이런 답답한 세상에 대중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물질, 명예, 지위등이 나라고 생각하고 많이 채우려고만 했는데, 막상 잘 채워지지도 않을 뿐더러 채워도 채워도 갈증만 더 생기다 보니 진실이라고 믿었던 삶에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긍정적 시그널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여하튼 서두가 길었지만 오늘 소개할 책은 이런 현실을 일찍이 간파하고 인문고전을 통한 삶의 지혜 찾기와 평생 공부를 설파해온 고미숙씨의 호모쿵푸스. 원래 독문학 전공이었으나 4학년 때 문학평론가 김홍규 교수의 강의를 듣고 가슴 떨림이 있어 그의 문하에 들어가 고전 인문학을 전공하게 된다. 훌륭한 스승과 선배들 밑에서 공부의 기본기를 익힌 뒤에 지식인 공동체인 감이당을 조직하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인문학 평론과 집필, 그리고 강의를 통해 대중들과 호흡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문학과 의역학을 접목한 인문의역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세상과 만나고 있다.

호모쿵푸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문사회학자가 지은 책이거니 했다. 책을 주문하고 처음 받았을 때, 세련되지는 못한 디자인과 호모쿵푸스의 작명에 관한 저자의 설명을 듣고 좀 유치하다는 생각을 먼저 했음을 고백해야 겠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야생에서 자라온 자들이 풍기는 거친 개성과 글 전개에 조금씩 빠져들게 되었다. ‘호모쿵푸스는 공부를 하기는 하되, 몸을 단련하고 인생을 바꾸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저자가 붙인 이름이다.

 

대한민국 사람들, 참 공부 안 하는 민족이다. 3년 전쯤 지중해 연안의 몰타로 학회 차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영국의 히드로 국제공항에서 올라탄 영국인들이 비행기 안에서 거의 대부분 꽤 두꺼운 책들을 읽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는 어떤가? 지하철을 타 보면, 스마트폰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문자채팅을 하거나 가쉽 수준의 기사를 탐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인들은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더 이상 성장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는다. 급변하는 지식 정보화 시대에 그것도 100살까지 살게 될 호모헌드레드 세상에서 대학교 때 배운 공부로 평생을 버티겠다는 것은 완전히 도둑놈 심보가 아니던가? 상식이 있다면 이제 평생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하기는 하되 어떤 책으로 공부를 해야 할까? 전공이나 삶에 필요한 지식은 검색을 통해 필요할 때 습득하면 되지만 뭔가 뿌리가 되는 공부를 병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매일 수백 종의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 책을 다 읽는 것은 불가능 하고 또 불필요하다. 즉 책의 선택이 아주 중요해진다. 저자 처럼 나 또한 고전에서 답을 찾기를 권한다. 고전은 달리 말하면 짧게는 수 백년에서 길게는 수 천년 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검증된 스테디셀러다. 시대를 아울러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그 책에 그 만한 내공이 담겨 있다는 반증이다. 여기서 잠깐 내 이야기를 곁들여야 겠다. 나 또한 30이 될 때까지 전공공부 이외의 책은 1년에 2~3권 정도 볼 정도로 독서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사실 책에 대한 관심도 세속적인 목적 때문에 가지게 되었다.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투자서들을 닥치는 대로 읽다가,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의 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라는 한 문장에 필이 꽂혀 부자학, 성공학으로 독서의 방향이 넘어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2000년 초에 붐을 일으켰던 자기계발서들이었다. 여하튼 그런 책들을 또 100여권 탐독하다 보니, 그 책들 속에서 부자가 되고 싶다면 정말로 원하고 바라는 일을 하라는 문장 하나가 나를 요동치게 했고,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를 찾아서 또 책을 뒤지다 보니 영성, 철학, 인문 등의 책으로 지평이 넓어지게 된 케이스다. 물음을 가지고 독서를 했기 때문에 책의 구절 하나 하나를 내 삶에 빗대어 해석하기 시작했고, 속독 보다는 지독으로 양서를 골라 읽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삶, 인생에 관한 나의 글들이 모여서 책을 펴내게 되었고 현재까지 총 10권의 책을 세상에 내 놓는 작가의 길을 병행하여 걷고 있다. 

 

누가 내게 독서를 통한 공부를 묻는다면 이 책의 저자인 고미숙씨 처럼, ‘인문고전을 골라 한 문장 한 문장을 필사하면서 또 그 내용을 자기의 삶에 빗대어 자기 목소리로 소화하면서 읽어 나갈 것을 권한다. 그래야 책을 읽어도 온전히 자기의 것이 된다. 이런 과정 없이 그냥 구독 권수 늘리기에 재미를 들여서는 책을 통해 깊게 성장하지 못할 뿐더러 무엇보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진정 멋지지 않던가? 이렇게 읽어 나가기 때문에 많은 책들을 읽기는 힘들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시간 보다 그 내용을 내 것으로 소화해서 내 글로 남기는 과정이 3배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독서는 읽어가면서 스스로 설득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내 아이의 경우를 이야기 해야겠다. 1년 전부터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인 첫째, 둘째 한테 일주일에 책 한권씩을 읽게 하고 주말에 그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불과 3달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마지 못해서 책을 읽고 발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데 어느 주말 첫째의 얼굴이 확연하게 밝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알고보니 긍정의 심리학이라는 책의 한 문장 성공하고 싶으면 웃어라구절에서 스스로 설득당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첫 아이의 삶은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 아침에도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일어나자 마자 큰 소리로 ! ! ! 오늘은 내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를 외치며 웃음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동안 아빠인 내가 자기에게 한 이야기와 때때로 든 매들이 다 자기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음을 스스로 이해하게 되었다. 스스로 설득되어 자가발전형으로 탈바꿈한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최근에는 내 책상위에 있는 논어를 만지작 거리면서 자기 스스로 한 번 해석을 해 보겠다고 의욕을 불사르고 있다. 이런 것이 진정 독서의 위대한 힘이 아닐까 한다.

 

고미숙의 호모쿵푸스는 내가 독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견해와 상당부분 일치하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암송과 구술부분이다. 나는 그녀의 책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 가족들 모두가 사서삼경을 소리내어 읽고 한 구절, 한 구절을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공부하는 그런 정겨운 그림 말이다. 자녀교육에 관해서 한 마디를 더 하자면, 아이를 리더로 키우기 위해서는 고전을 읽히고 그 내용을 익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고전은 더 이상 해 묵은 옛날 책이 아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는 하나, 인간, 자연, 영성등에 대한 근본적 지혜와 통찰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다. 붓을 드는 대신에 자판기를 두드리고, 말을 타고 가는 대신, 이메일을 보내지만 결국 삶은 관계의 연속이라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갈등과 변화 무쌍한 상황에 대한 대처와 지혜의 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책이다. 또한 그 책의 저자들은 성인이나 천재로 추앙받는 사람들이 아닌가? 요즘 아이들은 주입식 교육에 물들어 자기 글을 쓸 줄 모르고 자기 이야기를 할 줄 모른다. 시키는 일만 잘 할 뿐이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고 있다. 140자 이상의 글은 적어 본 적이 없고 전공 공부 이외에 예술, 문학, 철학, 영성등에 관련한 책들을 읽지 않기 때문에 의식의 깊이가 얕고 교양은 빈약하다. 이에 반해서 인문 고전을 통해서 삶을 깊게 바라보고 자기의 삶과 다른 이의 삶을 통으로 꿰뚫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런 깊음 없이 주입식 교육을 받아서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간다고 하더라도 허울뿐인 명예가 아닐까? 저자가 책에서 언급했듯이 수능이나 대학입학 성적을 다 늙어서 까지 외고 다니면서 자신을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서울대 증후군을 가지고 스스로 위안 삼는 사람들은 얼마나 안타까운 부류인가?

 

물론 고전이라는 것이 읽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성장은 극에 달하는 긴장과 이완의 연속적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뤄진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한계를 넘을 정도로 근육을 긴장시키고 파열시켜야 한다. 그런 자기 껍질의 탈피 뒤에 새 살이 돋아 나듯이 우리의 의식도 이렇게 성장을 한다. 주입된 지식에만 길들여지는 것은 의식과 정신을 무능력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몸이 인스턴트만 탐닉을 하면 김치나 나물 같은 자연식을 못 먹는데, 이는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신체적 무능력인 것 처럼, 주입된 지식만 탐닉하는 것은 또 하나의 정신적 무능력이다. 이상으로 이 책을 통한 나의 생각과 느낌을 두서 없이 공유한다.

 [기억에 남는 구절과 나의 사유]

-꿈이 많으면 악몽이 된다.

(정말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삶이 아닌, 사회와 부모, 선생이 안겨준 꿈은 아무리 많아 봐야 다 헛된 꿈일 뿐이다. 진짜 내 꿈인 自夢을 찾는 것 만으로도 삶의 행복은 이미 절반 이상 이룩된 것이나 다름 없다. )

-어린 시절부터 하도 문제지만 풀다보니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몽땅 망각해 버린 것일까?

(떠 먹여주는 밥을 먹거나 잘게 씹은 음식물을 넘기기만 바빴지, 우리의 교육이라는 것이 혼자 밥을 먹고 스스로 소화시키는 능력을 무시하지 않았나 싶다. 깊이 반성할 일이다.)

-크게 의심하는 바가 없으면, 큰 깨달음이 없다, 홍대용

(질문을 하는 순간, 답은 찾게 되어 있다. 사람의 크고 깊음은 그 사람이 품은 화두의 크기와 깊이에 비례한다. 예수와 석가가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은 그들이 품은 삶의 질문 자체가 위대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이 경박한 것 또한 돈 버는 것에만 정신이 팔리고, 깊이 있는 책 대신 가쉽 수준의 읽을 거리만 탐닉하며 스스로 크게 질문하는 법을 잃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내 성장의 팔할은 물음이었노라. )

-이념이란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표현되어야 한다.

(이념, 교육, 깨달음도 결국 종착점은 삶이라는 무대다. 100 수레의 책을 읽었어도 행동 하나 바뀌지 않았다면 결국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것과 무슨 차이인가? 오히려 내가 다 안다는 오만함만 생기지 않을까? 결국 우리도 진정 배움은 스승의 가르침이 아닌, 스승의 삶과 존재 그 자체로부터 터득되는 것이리라)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라 자신을 진정 비울 수 있는가다.

(배움이란 나와 다른 세상과의 접촉을 전제로 한다. 관계성에 있어서 경청이 중요하듯이 배움에 있어서도 경청과 경독은 필수다. 제일 먼저 자기를 비워 새로운 지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시켜 자기의 목소리로 재해석을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의 통찰과 지혜를 얻는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에게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죽음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선물이다. 우리가 언제 어떤 형태로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을 지 모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언제고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삶을 아끼고 가꿀 수 밖에 없다. 언제 죽어도 한 점 후회 없기 위해서는 정말로 삶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궤변론적이기는 하지만 에피쿠로스의 죽음에 대한 단상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통찰을 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에피쿠로스가 현상계와 존재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통찰을 통해서 육적 죽음 너머의 영적 존재로서의 참 자기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멕시코에선 아이들이 쓰레기통에서 쓰레기를 먹고, 미국에선 맥도날드에서 쓰레기를 먹는다

(자연은 그 자체로 조화롭고 완전하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식품은 완전하며 우리의 면역력을 증강시킨다. 하지만 인간의 가공식품은 의도적으로 그러한 조화를 파괴시킨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몸의 조화로움과 자가면역력은 파괴되고 만다. 한 때 서양의 가공식품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모유 보다는 분유가 더 좋은 것으로 알던 때도 있었고, 최근까지도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팔리던 스팸이 가장 소중한 분들에게 드리는 최고의 선물로 등극했을 때도 있었다. 한 차례의 이탈을 통해서만 인간은 지혜를 얻는 법인가?)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한 초보자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인한 자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한 자다.

(자신의 것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 내 것, 내 의견이 중요하고 그것을 내세운다. 하나의 틀이 있어서 관계 하는 사람들도 불편하다. 그런가 하면 이미 굳을 대로 굳은 틀 때문에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변화와 성장의 정체 속에 자신의 샘물은 썩기 시작한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좀 더 힘이 있는 자다. 열정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늘 바쁘게 달린다. 더 많이 쌓고, 더 많이 가지려 한다. 그런데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다. 진정 위대한 자는 내 것, 그리고 심지어 마저 버린다. 전 세상을 타향으로 볼 만큼 사심이 없다. 그냥 텅 비어 있다. 공기와 같다. 그렇게 비워 있기 때문에 누구와도 하나로 만날 수 있다. 다 비웠는데 풍성하게 다 가졌다. 드러내지 않고 행하나 모든 것이 절로 이루어진다. 무위의 경지다)

-소유에의 집착은 근본적으로 반 생명적이다.

(내 것, 너 것이 따로 없다. 유럽인들이 처음 북아메리카에 왔을 때 땅을 팔라는 그들의 요구를 인디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어떻게 땅에 선을 긋고 값을 매기는가? 대지의 꽃들과 나비들의 아름다움에 얼마의 값을 매겨야 하는가? 또 그 위의 공기와 햇살은 어떻게 하는가? 자연과 우주는 이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 것이 있다고 강하게 우기는 생각 자체가 반 우주적, 반 환경적, 반 생명적이다.)

-자신의 본성대로 움직일 뿐인데 다른 이들에게 절로 생명의 기운을 전파해 주는 존재-

(들꽃을 보라! 각각의 꽃들은 자기의 색깔과 향기를 가진다. 하지만 그런 개체들은 또한 멀리서 보면 참 아름답게 조화를 이룰 줄 안다. 이것이 자연의 속성이다. 하지만 인간이 개입하면 어떤가? 겉보기에 화려한 장미꽃 한 송이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전체의 조화를 망가뜨린다. 그리고 그 현란한 아름다움은 이내 싫증을 유발한다. 우리도 생각과 감정, 인정욕구, 상처들을 내려놓고 순수한 욕구와 이끌림 대로 살아보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순수한 설렘을 찾아 신바람 나는 삶을 살면 들꽃들 처럼 조화의 아름다움은 저절로 펼쳐지지 않을까?)

 [정보]

-‘이타카(Ithaca)’: 깊고 그윽한 숲, 신비로운 호수와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디언들의 터전이었던 곳

-‘얼 쇼리스희망의 인문학’ : 추가로 일독해야 할 책

-‘이이의 격몽요결: 추가로 일독할 것

-‘박지원의 열하일기: 저자 고미숙의 책을 통해 박지원에 대해 재조명하는 계기로 삼을 것

-루카치, 벤야민, 골드만, 들뢰즈, 카타리, 푸코, 정화스님: 관심을 가져야 할 저자들

-린 마굴리스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시보다 아름다운 과학책이라는 아이러니가 나를 강하게 이끈다.

- 카프카: ‘추상적인 자유는 없다. 다만 지금 나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문턱이 있을 뿐, 그 문턱을 넘어설 때 비로고 그만큼 자유의 공간이 열린다

안광호

[주제어] 고미숙, 호모쿵푸스, 감이당

khajoh@naver.com

[칼럼니스트 소개]

안광호 박사는 포항공대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5년 동안 통신용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5제품을 양산하여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세계최초로 CDMA1 Chip Transceiver 를 개발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지식경제부산하 국가연구소인 '전자부품연구원'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며,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기획하고, 선도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잘산다는 것이 뭘까? 에 대한 순수한 탐구욕을 가지고 있으며과학의 바탕위에 인간의 심리와 의식세계를  통합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글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저서로는[알아차림, 매일경제신문사], [소프트마인드, 비전과리더십], [마음세수, 예문당], [삼성붕괴시나리오, 다산북스], [열다섯 살 꿈의 시크릿, 미래지식], [긍정, 원앤원북스],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도전, 에이원북스], [6 시그마로 부자아빠 되기, 네모북스], [행복한 사과나무 이야기, 아름다운사회] 가 있으며, [꿈과 성공이 있는 명품인생] 이라는 오디오북을 발간하였습니다. 2007년 헤럴드 경제가 주최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사람’ 20인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컨설팅, 코칭, 집필 및 칼럼에 대한 문의 및 의뢰는 khajoh@naver.com, 홈페이지: www.akh.co.kr, 블로그: www.doctorahn.co.kr, 페이스북:www.facebook.com/kwanghoahn1, 트위터:www.twitter.com/kwanghoahn

 

[과학과의 통합을 위한 그의 독창적 행보]

l  6 Sigma Black Belt 획득

l  STRONG(직업흥미프로그램) 전문가 획득

l  한국심리학회 MBTI 전문가 획득

l  에니어그램 수련

l  Habiram Sprituality Training Course (영성심화수련)

l  위빠사나 명상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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